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도시를 '기억과 욕망의 그물망'이라 불렀다.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지배했던 가장 강력한 욕망은 단연 '속도'였다. 논밭을 가로지르며 솟아오른 회색빛 고가차도는 그 질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콘크리트 기념비였다. 1961년 아현고가차도를 시작으로 서울 하늘에 그어진 109개의 회색 선들은 한때 근대화의 훈장이자, 하늘을 가로지르는 문명의 지퍼였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훈장은 도시의 흉터로 변해갔다. 거대한 콘크리트 상판은 햇빛을 가로막아 그 아래를 어둡고 축축한 음지로 만들었고, 매연과 소음은 이웃을 갈라놓는 장벽이 되었다. 2002년 시작된 서울의 '하늘 비우기'는 2025년까지 총 21곳의 고가차도를 철거하며 도시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반세기 동안 하늘을 분절했던 회색 장막이 걷히자, 비로소 가려졌던 도시의 민낯과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물론 고가차도 철거가 가져올 교통 체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도로가 막히면 도시의 동맥경화가 찾아온다"는 산업화 시대의 논리는 여전히 완강하다. 실제로 일부 구간에서는 철거 초기 교통 정체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는 단순히 효율적인 이동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계가 아니다. 속도만을 숭상하던 도시는 결국 인간을 소외시켰다. 고가 아래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고 시민의 보행권을 확보하는 것은, 속도의 지체라는 기회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그릇의 쓸모는 비어 있는 공간(無)에 있다"고 했다. 고가가 사라진 서울의 거리는 이 '비움의 미학'을 증명한다. 콘크리트 기둥에 가로막혀 단절되었던 골목들이 다시 연결되고, 보행자들은 매연 가득한 지하도가 아닌 지상에서 햇살을 받으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회색빛 장막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녹지와 쉼터는 시민들에게 정서적 안정과 소통의 광장을 선물하고 있다.
과거의 고가가 성장을 향해 질주하던 '전진의 시대'를 대변했다면, 지금의 평평해진 도로는 주변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대'를 상징한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이 이제는 느린 걸음 속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회색 콘크리트 그늘 아래서 움츠러들었던 시민들의 정서는 이제 대지 위로 퍼져나가는 푸른 잔디처럼 싱그럽게 피어나고 있다. 공간의 변화가 인간의 마음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가로막던 거대한 회색 대들보가 사라진 오늘, 서울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속도의 숭배에서 벗어나 비움의 풍요를 선택한 이 도시는 이제 더 이상 기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가가 사라진 자리에 내려앉은 따스한 햇살을 맞이하며, 우리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회색 콘크리트 대신 푸른 하늘을 온전히 가슴에 품는다. 대지 위에 다시 흐르기 시작한 서울의 숨결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깊은 여운을 남기며 번져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