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가을 결혼식을 위해 지난주부터 서울 시내 예식장 투어를 시작했는데, 마음에 드는 곳은 이미 예약이 꽉 찼더라고요. 그나마 남은 시간대는 대관료와 식대 합쳐서 2천만 원이 훌쩍 넘는데, 이게 정말 평범한 직장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모르겠습니다.” 대기업 대리급 사원인 이모(31) 씨는 최근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결혼식장 예약이 이른바 ‘오픈런’ 수준으로 치열해진 데다, 부르는 게 값인 ‘웨딩 인플레이션’이 청년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생 고령화 흐름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결혼 비용은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수요 자체가 줄어들면서 동네 예식장들이 잇따라 문을 닫자, 살아남은 대형·고급 예식장으로 예약이 몰리며 단가가 급등하는 악순환이 발생한 결과다. 이제 결혼은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을 넘어, 청년 세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경제적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웨딩 인플레이션'의 그늘, 통계로 증명된 청년들의 비명
실제 청년들이 체감하는 결혼 비용의 상승세는 통계로도 여실히 증명된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6년 2월 기준 전국 평균 결혼 서비스 비용은 2,139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불과 두 달 전인 2025년 12월과 비교해도 2.3%나 상승한 수치다.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로 불리는 필수 패키지 상품과 예식장 대관료, 식대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른 탓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인상을 이유로 들지만, 청년층이 느끼는 박탈감은 임금 상승률을 훨씬 웃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예식장 수급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전국의 중소형 예식장 수십 곳이 폐업했다. 혼인 건수 감소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결과다. 공급이 줄어들자 살아남은 예식장들은 프리미엄 전략을 취하며 가격을 올렸고, 선택지가 좁아진 예비부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주거 장벽과 결합된 '결혼 포기'의 악순환
더 큰 문제는 결혼식 자체 비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신혼부부가 살 집을 마련하는 주거 비용까지 더해지면 청년들이 마주하는 장벽은 거대한 성벽으로 변한다. 하나금융연구소의 신혼부부 관련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마련 비용을 포함한 전체 결혼 비용은 청년층의 평균 자산 규모를 압도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자금 대출 금리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주거 안정을 확보하지 못한 청년들은 결국 결혼 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선택을 내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결혼 비용의 급증이 저출생 문제를 심화시키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아 시작조차 못 하는 ‘결혼 유예 세대’가 늘어날수록, 출산율 반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개인의 허례허식이나 눈높이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구조적인 경제적 압박이 너무나도 거세다.
공공 예식장 활성화,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되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공공기관 강당이나 공원 등을 저렴하게 대여해 주는 '공공 예식장' 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대관료는 저렴하지만 피로연 출장 뷔페나 무대 연출, 주차 공간 확보 등 부대 서비스를 예비부부가 직접 일일이 알아보고 계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공공 예식장은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시설이 노후화되어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을 올리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따라서 공공 예식장이 실질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공간 대여를 넘어선 종합적인 플랫폼 지원이 필요하다. 민간 전문 웨딩 플래너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저렴하면서도 품격 있는 패키지 상품을 표준화하여 제공하고, 주차 및 하객 편의 시설을 대폭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 예식장 이용 부부에게 신혼부부 주택 자금 대출 우대 금리를 적용하는 등 주거 정책과의 유기적인 연계도 필수적이다.
결혼은 한 가정의 시작이자 사회적 재생산의 첫걸음이다. 청년들이 비용 부담 때문에 결혼식장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사회는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웨딩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보다 과감하고 실효성 있는 맞춤형 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