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면 으레 거리를 가득 채우던 확성기 소리도, 유세차의 화려한 로고송도 들리지 않는다. 주민들의 일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선택권'이 통째로 생략된 거대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지난 2026년 5월 15일 후보 등록 마감 결과, 인구 51만 명의 경기 시흥시장 선거에 임병택 후보가 단독 입후보하며 무투표 당선 지역이 되었다. 유권자가 투표소로 갈 이유를 잃어버린 '무투표 당선' 지대의 현주소는 오늘날 우리 지방자치가 처한 차가운 현실을 대변한다.

무투표 당선은 후보자가 1명뿐이어서 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선거일에 그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는 제도다. 선거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행정적 편리함 뒤에는, 지역 주민들의 정치적 소외와 지역 정치의 황폐화라는 치명적인 대가가 숨어 있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수장을 검증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결정된 결과를 수용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주민의 목소리: '우리는 선택할 권리를 잃었다'

시흥시에서 만난 한 시민은 '선거를 안 하니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 지역을 위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 길이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유권자는 '투표는 시민이 정치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인데, 그 수단이 사라지니 지역 정치인들이 주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치열한 토론회도, 정책 대결도 사라진 자리는 고스란히 정치적 무관심으로 채워지고 있다.

실제로 무투표 당선 지역의 주민들은 선거 이후에도 지역 행정에 대한 관여도가 눈에 띄게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경쟁자가 없는 선거 치르기는 당선인에게도 독이 된다. 주민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정책적 정당성을 확보할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결국 '무혈입성'한 단체장은 임기 시작부터 주민들의 무관심과 냉소라는 무거운 짐을 안고 출발하게 된다.

일당 독점과 정치 신인 진입 장벽이 만든 그늘

이러한 무투표 당선 현상이 고착화되는 배경에는 특정 정당의 지역 일당 독점 구조와 높은 정치 장벽이 자리 잡고 있다. 특정 지역에서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야당이나 신생 정당들은 후보를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는 지역 정치의 다양성을 말살하고, 참신한 정치 신인의 등장을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치 전문가들은 선거가 경쟁 없이 치러질 때 지역 사회의 발전 동력도 함께 멈춘다고 경고한다.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상호 견제하는 야당의 역할이 사라진 곳에서는 행정의 독주를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지방자치는 결국 고인 물처럼 썩기 마련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투표 당선' 제도의 대안과 지방자치의 회복

전문가들은 무투표 당선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독 입후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주민 동의를 묻는 '찬반 투표제'나 일정 비율 이상의 투표율을 요구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유권자에게 최소한의 거부권을 부여함으로써 당선인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주민들의 관심을 유지하자는 취지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주민이 스스로의 대표를 선택하고 참여하는 데 있다. 투표 없는 선거구가 늘어날수록 풀뿌리 민주주의의 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침묵하는 선거구를 깨우고 유권자의 주권을 되찾아주기 위한 정치권의 진지한 고민과 제도 개혁이 시급한 시점이다. 선택권 없는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