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의 심장부인 수도권으로 향하는 전력 고속도로가 막혔다. 발전소는 가득한데 이를 보낼 송전선로가 없어 발전기를 멈춰 세워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현실화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동해안 지역의 민간 석탄화력발전소인 강릉안인화력의 가동률은 약 35%, 삼척블루파워는 20% 내외에 머물고 있으며, 동해안 발전소들의 평균 가동률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신 고효율 발전소들이 송전 제약이라는 병목현상에 가로막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전력 공급의 불균형은 단순히 발전사의 적자에 그치지 않는다. 첨단 반도체 공장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밀집할 수도권의 전력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의 극심한 미스매치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 자체가 멈춰 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발전기 돌려도 보낼 길 없는 동해안의 역설

동해안 지역의 송전 제약이 이토록 심화한 원인은 핵심 송전망 건설의 장기 지연에 있다. 동해안에서 생산된 대규모 전력을 수도권으로 수송하기 위해 추진 중인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 선로 건설 사업은 당초 2019년 완공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로가 지나가는 지자체 및 주민과의 갈등, 인허가 지연 등으로 인해 완공 목표는 2025년 10월로 무려 6년 이상 밀려난 상태다.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는 동안 동해안에는 대규모 발전소들이 차례로 들어섰다. 신한울 원전 1·2호기를 비롯해 대형 민간 발전소들이 준공되었지만, 정작 이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낼 '길'이 없다 보니 가동률을 강제로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값싼 원전과 고효율 석탄발전 대신 수도권 인근의 비싼 LNG 발전기를 돌려야 해 전력 구입 비용이 상승하고, 이는 결국 한국전력의 적자 가중과 국민 전기요금 인상 압박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오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아킬레스건이 된 전력망

더 큰 문제는 미래 먹거리인 첨단 산업단지 공급에 가해질 타격이다. 정부와 기업이 경기도 용인에 조성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2050년까지 무려 10기가와트(GW) 이상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현재 서울시 전체 소비 전력의 상당 부분에 맞먹는 규모다. 첨단 반도체 라인은 단 0.1초의 미세한 정전으로도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생명이다.

하지만 현재의 송전망 구축 속도로는 용인 클러스터가 본격 가동되는 시점에 맞춰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해안의 무탄소 전원과 남해안의 태양광·원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오지 못한다면, 반도체 공장을 짓고도 전기가 없어 가동하지 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속도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전력망 부족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셈이다.

'국가 기간 전력망 특별법' 제정, 더는 미룰 수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한전 주도 방식과 개별 지자체 인허가 절차로는 국가적인 전력망 적기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전선로 건설은 여러 지자체를 통과하는 광역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하에서는 지역 주민의 반대나 지자체의 인허가 거부를 해결할 법적 장치가 미비하다.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합리적인 보상 체계 마련과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행정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이 요구된다. 특별법은 국무총리 산하에 위원회를 설치해 범정부 차원의 인허가 특례를 부여하고, 송전선로 주변 지역에 대한 보상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전력망 확충은 단순한 인프라 건설이 아니라 국가 안보이자 산업 경쟁력의 기반이다. 여야가 정쟁을 접어두고 특별법 제정에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전망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그 대가는 국가 경제 전체의 침체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