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의 좁은 골목길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캐리어 끄는 소리, 각국 언어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그리고 연신 울리는 카메라 셔터음이 정적이어야 할 한옥 정취를 메운다. 대문마다 '주민이 살고 있으니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밀려드는 인파 앞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일생에 한 번뿐인 이국적인 관광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일 아침 눈을 떠 밤을 맞이하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서울의 대표적 전통 주거지인 북촌은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의 최전선이 되었다. 단순히 소음과 쓰레기 문제를 넘어,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이른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관광 활성화라는 경제적 성과의 이면에 가려진 주민들의 깊은 한숨은 이제 단순한 민원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붕괴라는 구조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밀려드는 외지인, 떠나는 주민들… 무너지는 정주 생태계

관련 지자체 및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의 주민 수는 2023년 기준 약 6,100명에 불과하다. 반면 이곳을 찾는 연간 방문객은 무려 664만 명에 달한다. 주민 한 명당 매년 1,000명이 넘는 관광객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감당하기 힘든 인파의 유입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주거 환경 악화로 이어졌고, 결국 최근 5년간 북촌의 주민 인구는 27.6%나 급감했다. 동네의 4분의 1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주민들이 떠난 자리는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 대신 외지인을 겨냥한 카페, 기념품점, 게스트하우스 등이 채우고 있다. 세탁소, 목욕탕, 소형 슈퍼마켓 등 주민들의 일상을 지탱하던 생활 밀착형 상점들이 사라지면서 남아있는 주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여기에 사생활 침해 문제도 심각하다. 일부 관광객들이 한옥 내부를 구경하겠다며 불쑥 대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담벼락 너머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위가 일상적으로 반복되면서, 주민들은 안방에서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적 낙수효과의 허상과 깊어지는 갈등

오버투어리즘의 가장 큰 모순은 관광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이 정작 피해를 감내하는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비용의 대부분은 외부 자본이 운영하는 대형 프랜차이즈나 숙박업소, 그리고 일부 상업 시설로 흘러 들어간다. 정작 소음과 쓰레기, 교통 혼잡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원주민들에게는 어떠한 보상이나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기존의 영세 상인들마저 내쫓기는 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만 심화될 뿐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지역 사회 내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도화선이 된다. 관광 활성화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상인들과 조용한 주거 환경을 원하는 주민들 사이의 반목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지자체가 야간 통행 제한이나 관광 시간제 도입 등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상인들의 반발과 단속의 실효성 부족으로 인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행정 당국 역시 관광 산업 활성화라는 거시적 목표와 정주권 보호라는 미시적 복지 사이에서 갈등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통제'를 넘어 '공존'으로… 글로벌 상생 모델의 힌트

전문가들은 이제 관광 정책의 패러다임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공존'으로 완전히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몇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는지를 보여주는 정량적 지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쾌적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지, 관광이 지역 공동체에 어떤 긍정적 기여를 하는지를 평가하는 정성적 지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선진 관광도시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오버투어리즘을 먼저 겪은 도시들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관광객 수 제한, 관광세 부과를 통한 지역 주민 복지 재원 마련, 그리고 지속 가능한 관광 인증제 도입 등 적극적인 상생 정책을 펼치고 있다. 관광객들이 지불한 비용의 일부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공공 인프라 개선에 직접적으로 환원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북촌 역시 단순한 '관광 통제 구역'이 아닌, 주민의 일상이 보존됨으로써 비로소 전통문화의 가치가 빛나는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주민이 살지 않는 한옥마을은 껍데기만 남은 세트장에 불과하다. 지속 가능한 상생 관광은 주민들의 정주권을 최우선 가치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관광객과 주민, 그리고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관광 생태계 구축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사회의 지혜로운 결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