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이 무책임한 한마디가 개인의 가정을 넘어 국가 경영의 기본 철학으로 자리 잡는 순간, 그 공동체의 미래는 예고된 파산으로 향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정부가 빚을 내어 돈을 쓰는 것을 당연한 권리이자 복지로 여기기 시작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일시적 처방이었던 재정 확장은 어느새 중독성 강한 진통제처럼 매년 반복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달콤한 부채의 덫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의지가 있는가? 질문의 답을 피하기에는 이미 경고등의 불빛이 너무도 붉고 선명하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26년 4월 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25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의 수치는 가히 충격적이다. 2025년 기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합산한 국가채무가 전년 대비 무려 129조 4,000억 원이나 급증한 것이다. 1년에 130조 원에 육박하는 나랏빚이 새로 쌓였다는 사실은 단순히 통계학적 수치의 변화를 넘어선다. 이는 저출생·고령화라는 구조적 재앙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이 미래 세대의 주머니를 털어 현재의 풍요를 가불해 쓰고 있음을 증명하는 뼈아픈 기록이다.

상황이 이토록 엄중함에도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재정준칙 법제화'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하고 있다. 재정준칙은 정부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재정 건전성 가이드라인을 법으로 규정하는 장치다. 일각에서는 재정준칙이 경제 위기 시 정부의 유연한 대응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것이라 우려한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오도하는 주장이다. 진정한 유연성은 평소에 곳간을 튼튼히 비축해 두었을 때 비로소 발휘된다. 아무런 통제 장치 없이 곳간을 비워둔 채 맞이하는 위기는 유연한 대응이 아니라 파국으로 이어질 뿐이다.

세계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신용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설적이게도 '건전한 재정'이었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대외 충격에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가채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더 이상 한국 경제를 안전지대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재정준칙 도입을 미루는 1분 1초마다 국가 신인도 하락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우리 경제 전반에 누적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 확보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대립 구도로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생존이자, 아직 투표권조차 없는 미래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이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재정 지출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강제력 있는 법적 테두리, 즉 재정준칙의 도입이 시급하다. 더 이상의 유예는 방임이자 직무유기다. 국회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재정준칙 법제화라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