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회생법원 복도.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앳된 얼굴의 청년들이 두꺼운 서류 봉투를 품에 안은 채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자산 시장 열풍 속에서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빚내서 투자)'의 대열에 합류했던 이들이다. 화려한 성공을 꿈꾸며 시장에 뛰어들었던 2030 세대의 종착역은 안타깝게도 법원의 개인회생 창구였다. 고금리와 고물가의 장기화라는 거대한 경제적 파고를 넘지 못한 청년들이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행렬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단순히 일시적인 경기 변동의 여파로 치부하기에는 청년층의 채무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들의 개인회생 신청 급증은 미래 성장 동력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경종을 울리고 있다. 자산 형성의 기회를 잃고 출발선에서부터 빚더미에 주저앉은 청년들을 구제하기 위해, 일시적인 임시방편을 넘어선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금융 재기 안전망 구축이 시급한 시점이다.

고금리·고물가 덫에 걸린 청년 영끌족의 그늘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와 자산 가격 폭등은 청년들에게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낙오된다'는 포모(FOMO·소외 불안 증후군) 증후군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청년이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켜 부동산과 주식, 가상자산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글로벌 긴축 기조와 함께 가파르게 치솟은 금리는 청년들의 목을 죄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여기에 고물가 장기화로 실질 소득마저 감소하면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다중채무 청년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관련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채무자 중 20대와 30대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소득 기반이 취약한 청년층은 고금리 충격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받는다. 대기업이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수의 청년이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어 금리 인상에 따른 가처분 소득 감소를 견뎌내지 못했다. 제1금융권에서 밀려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심지어 사채 등 고금리 다중채무의 악순환에 빠진 뒤 결국 회생 절차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난 이유다.

신용 회복 지원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실효성

정부 역시 청년층을 비롯한 서민층의 신용 회복을 돕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6년 1월 22일 기준으로 소액 연체 채무를 전액 상환하여 신용회복지원 혜택을 받은 개인 257.2만 명의 신용평점이 평균 29점 상승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연체 정보를 삭제해 신용 등급을 올려줌으로써 이들이 다시 정상적인 경제 활동과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준 조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신용 사면 조치가 일시적인 숨통을 틔워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용 점수가 올라가 다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더라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소득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채무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신용 점수 복구를 넘어, 청년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자산 관리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입체적인 사후 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청년 맞춤형 '금융 재기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청년층의 채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장기간 채무의 굴레에 갇히게 되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생산 활동 인구에서 이탈해 국가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따라서 청년들의 특성을 반영한 정교하고 선제적인 금융 안전망 설계가 필요하다.

우선 법원의 회생 절차와 고용 지원 프로그램을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채무 조정 단계에서부터 맞춤형 직업 훈련과 취업 알선을 패키지로 제공해, 채무자가 실질적인 소득을 올려 빚을 갚아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청년기부터 올바른 금융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생애주기별 금융 교육을 의무화하고, 고위험 투자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는 예방적 시스템 체계화도 필수적이다. 실패를 경험한 청년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신속하게 경제 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보장될 때,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도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