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사는 일이 이토록 단순하지 않은 나라가 또 있을까. 서점 선반에서 집어든 소설 한 권,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가격은 똑같다. 10% 할인, 5% 적립. 법이 정해준 상한선이다. 어딜 가도 같은 값. 얼핏 공평해 보이지만, 그 공평함 속에 묘한 역설이 숨어 있다.

2014년 전면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무분별한 가격 경쟁으로부터 출판 생태계를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대형 온라인 서점이 50%, 60% 할인 경쟁을 벌이자 중소 출판사와 동네 서점이 줄줄이 쓰러졌고, 제도는 그 방파제로 설계됐다. 의도 자체는 선했다. 문제는 결과다.

통계는 냉정하다.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2014년, 국내 인터넷서점 매출은 1조 2,804억 원이었다. 그것이 2025년엔 2조 5,65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불어났다.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설계된 제도 아래에서, 정작 온라인 플랫폼이 더 크게 자랐다는 뜻이다. 할인 폭을 묶어 놓으니 소비자들은 가격 대신 편의성으로 서점을 골랐고, 그 편의성 싸움에서 동네 서점은 처음부터 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반론은 있다. 도서정가제가 없었다면 가격 경쟁은 더 극단으로 치달았을 것이고, 중소 출판사는 벌써 씨가 말랐을지 모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신간 출판 종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으며, 독립 출판의 생태는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일정 부분 숨을 쉬어왔다는 분석도 있다. 이 지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 하나. 제도가 보호한 것은 출판 생태계인가, 아니면 기존 유통 질서인가. 가격을 고정하면 경쟁은 품질이 아닌 마케팅으로 옮겨간다. 대형 출판사는 광고와 기획력으로 신간을 밀어 올리고, 자본이 없는 소규모 출판사는 서점 진열대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할인이 사라진 자리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장벽이 들어섰다.

독자의 처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절판 도서, 오래된 스테디셀러, 이미 시장에서 충분히 회수된 책들까지 같은 정가로 묶여 있다. 도서관 예산이 빠듯한 지방 소도시의 사서는 살 수 있는 책의 수가 줄었다고 토로한다. 지식의 유통을 가로막는 제도가 과연 문화를 위한 것인지, 의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도서정가제의 본래 얼굴은 따뜻하다. 책을 상품이 아닌 문화재로 보겠다는 인식, 그 위에 설계된 보호막이다. 프랑스의 랑 법, 독일의 도서가격구속제도가 그 모델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제도는 강력한 공공 독서 지원, 지역 서점 보조금, 도서관 네트워크와 함께 작동한다. 뼈대만 빌려오고 살은 채우지 않았으니, 같은 옷이 다르게 맞는 것은 당연하다.

선의로 만든 울타리가 때로 정원을 가두기도 한다. 꽃이 담장 밖으로 뻗으려 할 때, 그 울타리를 고집하는 것이 정원을 사랑하는 일인지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