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A씨는 3년을 매달린 웹툰 연재를 접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새 회차가 플랫폼에 올라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해외 불법 사이트에 동일한 내용이 무료로 게재됐다. 독자들은 굳이 정식 플랫폼 결제를 하지 않았다. 수익은 쪼그라들었고, 다음 작품을 시작할 동력도 사라졌다. A씨의 사례는 국내 웹툰 창작 생태계가 직면한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1월 발간한 「2024 웹툰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웹툰의 불법 복제로 인한 피해 규모는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이 커질수록 불법 복제 규모도 함께 팽창한다는 점이 핵심 문제다. 국내 웹툰 시장은 K-콘텐츠 수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성장의 이면에서 불법 유통 생태계도 조직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경 밖으로 숨는 불법 사이트들
문제의 핵심은 지리에 있다. 대부분의 불법 웹툰 유통 사이트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 서버를 둔다. 동남아시아, 동유럽, 심지어 조세회피처로 알려진 소규모 도서 국가들이 서버 소재지로 활용된다. 국내 수사 당국이 사이트를 특정해도 해당국에 서버가 있으면 접근 자체가 막힌다. 국내법의 사정거리 밖에서 운영되는 구조다.
불법 사이트들은 단순히 파일을 복사해 올리는 수준을 넘어섰다. 광고 수익 모델을 갖추고, 일부는 불법 유료 구독제까지 운영한다. 웹툰 원작자나 플랫폼이 창출한 가치를 그대로 흡수하는 셈이다. 게다가 사이트가 차단되면 도메인을 바꿔 수일 내 재등장하는 '풍선 효과'가 반복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 사이트 URL을 차단해도, 새 주소로 이전하는 시간은 48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경험이다.
국제 공조, 어디까지 왔나
사법 당국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인터폴(INTERPOL)과 협력 채널을 유지하며 해외 서버 압수수색 및 운영자 검거에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보호원도 저작권 침해 모니터링 및 해외 당국 통보 업무를 병행한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대형 불법 사이트 운영자가 검거된 사례도 나왔다.
그러나 공조의 속도는 불법 사이트의 이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국가 간 형사사법공조 조약(MLAT)에 따른 증거 요청은 통상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 사이 불법 사이트는 이미 서버를 옮기거나 운영자가 잠적한다. 미국·유럽연합 국가들과는 비교적 원활한 공조가 이루어지지만, 법 집행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들과의 협력은 여전히 구멍이 많다.
플랫폼 기업들도 독자적 대응에 나섰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업체들은 자체 법무팀을 꾸려 해외 서버 호스팅 업체에 직접 콘텐츠 삭제를 요청하거나, 미국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DMCA)을 활용한 테이크다운 절차를 밟는다. 실효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삭제된 콘텐츠가 다음 날 다시 올라오는 현실 앞에서, 이는 모래주머니로 홍수를 막는 것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창작 생태계가 무너지면 산업도 없다
불법 복제의 피해는 플랫폼 매출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신인 작가들의 진입 의욕을 꺾고, 중견 작가들의 창작 지속성을 훼손한다. 웹툰은 드라마·영화·게임 원작으로 이어지는 K-콘텐츠 산업의 시작점이다. 원천 콘텐츠 생산자가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아래로 이어지는 2차·3차 산업도 흔들린다.
전문가들은 기술적 대응의 고도화와 함께 국제 규범 차원의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작권 침해를 다루는 국제 협약의 실효성을 높이고, 특히 웹툰 불법 유통의 거점이 되는 국가들과의 양자 협력 채널을 실무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AI 기반 불법 콘텐츠 탐지 기술의 도입도 빨라지는 추세지만, 기술이 법과 외교를 대체할 수는 없다.
한국이 웹툰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려면, 창작자가 만든 가치가 창작자에게 돌아오는 구조가 먼저 작동해야 한다. 지금은 그 구조의 절반이 국경 밖에서 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