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대공황 직후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팔린 장르는 뮤지컬 코미디였다. 사람들은 주식이 폭락한 날에도 찰리 채플린의 발길질에 박장대소했다.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현실도피」라 비웃었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웃음은 도피가 아니라 숨 쉬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사가 2026년 여름 서울의 멀티플렉스에서 조용히 반복되고 있다. 영화 '와일드 씽'은 개봉 첫날인 6월 3일 하루에만 16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개봉 18일째, 누적 관객은 101만 명을 넘어섰다. 이 숫자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영화 자체의 스케일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순수 제작비 80억 원. 손익분기점 200만 명. 블록버스터의 언어로 말하자면 중소형 전장에서 벌어진 선전이다.

올봄 극장가의 풍경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기대를 모은 대형 작품들이 잇달아 흥행 목표에 미치지 못하며 투자배급사의 얼굴을 어둡게 만들었다. OTT 플랫폼이 안방을 장악한 뒤로 「굳이 극장까지 가야 하나」라는 질문은 이제 습관적 자문이 됐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혼성 그룹의 복고풍 노래와 어설프지만 따뜻한 웃음을 내세운 중간 규모의 코미디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반론은 있다. '와일드 씽'의 흥행을 장르적 부활의 신호로 읽는 것은 성급하다는 시각도 타당하다. 단편적 흥행 성공이 곧 코미디 르네상스를 보증하지는 않으며, 101만이라는 숫자는 아직 손익분기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흥행에서 살아남는가보다, 왜 이 시점에 이 영화가 관객을 모으는가에 주목하고 싶다. 극 중 삽입곡 'Love is'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414만 회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숫자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 영화관을 나온 뒤에도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관객들, 이것이 진짜 흥행의 질감이다.

피로 사회에서 유머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 기술에 가깝다. 반도체 수출 호황 뒤로 청년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진단이 나오고, 환율 불안이 일상 속에 스며드는 지금, 사람들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 앞에서 한 번 더 멈칫한다. 두 시간짜리 사회 고발보다 두 시간짜리 너털웃음을 선택하는 것은 무지의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내일을 버티기 위해 오늘을 잠시 내려놓는 지혜에 가깝다.

체호프는 「웃음은 우는 것을 잊지 않는 자만이 제대로 웃을 수 있다」고 했다.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간 관객들이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너무 잘 알기에 잠깐의 해방을 사러 가는 것이다. 이 영화가 200만 고지를 넘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극장이 한동안 잊고 있던 기능 하나를 이 작은 코미디가 되살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웃음은 언제나 슬픔보다 한 걸음 늦게 도착하지만, 더 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