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건물 균열, 수능 연기, 이재민 1,700여 명. 그날 오후부터 오픈마켓 11번가의 '생존배낭' 검색량이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재난은 예고 없이 오고, 사람들은 그제야 움직인다. 문제는, 그 타이밍이 언제나 너무 늦다는 점이다.

최근 베네수엘라에서 규모 7.5의 강진이 연달아 발생해 카라카스 도심 건물이 무너지고 수천 명의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만, 한반도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2016년 경주, 2017년 포항에 이어 지진 빈도와 강도 모두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게 지질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도심에서 재난을 맞닥뜨렸을 때, 당신의 손에는 무엇이 있는가.

생존 배낭 — 72시간을 버티는 최소한의 무게

재난 대비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개념이 '골든 72시간'이다. 대규모 재난 발생 직후 공공 구조 시스템이 본격 가동되기까지 평균 사흘이 걸린다. 그 시간을 스스로 버텨야 한다. 생존 배낭은 바로 그 72시간을 위한 장비다.

행정안전부 권고 기준을 보면, 생존 배낭에는 식수(1인당 하루 2리터 기준 최소 3일치), 비상식량, 손전등과 여분 배터리, 구급약품, 방진 마스크, 호루라기, 현금 소액권, 신분증 사본, 보온 담요가 기본으로 들어간다. 여기에 개인 상황에 따라 상비약, 유아 용품, 반려동물 물품을 추가한다. 총 무게는 성인 기준 10~15kg을 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짊어지고 뛰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방청은 배낭을 침실 혹은 현관 근처에 두도록 안내한다. 어두운 밤, 흔들리는 건물 안에서 창고를 뒤질 여유는 없다. 또한 6개월마다 식품 유통기한과 배터리 상태를 점검하도록 권고한다. 준비해 두고 방치한 배낭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지진이 났을 때 — 3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지진 발생 시 첫 번째 본능은 뛰는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순간 밖으로 달려 나가는 행동은 오히려 위험하다. 유리 파편과 외벽 낙하물이 출입구 주변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소방청과 국민재난안전포털의 행동 수칙은 명확하다. 흔들림이 시작되면 튼튼한 테이블 아래로 몸을 피하고, 테이블이 없으면 방석이나 가방으로 머리를 보호한다. 가스 밸브는 흔들림이 멈춘 뒤 잠근다. 엘리베이터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건물 밖으로 나왔다면 넓은 공터나 공원으로 이동한다. 전봇대와 담장, 간판 아래는 피한다. 해안가에 있다면 지진 직후 즉시 높은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지진 해일(쓰나미)은 진동이 멈추고 수십 분 뒤에 덮쳐올 수 있다. '괜찮겠지'라는 판단이 가장 위험하다.

화재가 동반될 경우 행동 원칙은 달라진다. 낮은 자세로 연기를 피하고,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는다. 문 손잡이가 뜨거우면 열지 않는다. 고층에 갇혔다면 창문을 열고 옷이나 수건을 흔들어 위치를 알린다. 이때 생존 배낭 속 호루라기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연기 속에서 목소리는 금세 사라지지만, 호루라기 소리는 수백 미터 밖까지 닿는다.

평소의 습관이 재난의 생존율을 바꾼다

국제 재난 연구 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재난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변수는 장비가 아니라 '사전 행동 계획'이다. 가족과 함께 대피 집결지를 미리 정해두는 것, 비상 연락망을 외워두는 것(재난 시 휴대폰이 먹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집과 직장 반경 1km 내 대피소 위치를 확인해 두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본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진 대피 훈련을 의무화하고, 각 가정에 비상용품 비축을 법적으로 권고하는 '방재(防災)' 문화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아직 재난 훈련 참여율이 낮고, 생존 배낭을 실제로 갖춘 가구 비율도 미미하다는 평가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된다. 포항 지진 때 검색창을 열었던 그 손가락이, 이번에는 실제 배낭을 꾸리는 손이 되어야 할 차례다.

재난은 통계가 아니라 개인의 시간으로 찾아온다. 준비된 사람에게 72시간은 버틸 수 있는 시간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냥 사라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