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대부분의 청년이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는 나이다. 그 나이에 운동선수들은 '은퇴'를 맞는다. 대한체육회의 '2024 선수경력자 진로실태조사'는 국내 운동선수의 평균 은퇴 연령이 23.6세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이후, 38.19%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 열 명 중 네 명은 그 어둠 속에 그대로 남겨진다.

한 종목 국가대표 출신 A씨(가명)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루 여섯 시간 이상 훈련에 매달렸다. 수능은 치르지 않았다. 대학은 체육 특기생으로 진학했고, 20대 초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력서를 쓰려 앉은 날, 그는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검색했다. 자격증도, 인턴 경험도, 알바 경력도 없었다. 운동밖에 없었다.

경력이 아닌 '공백'으로 읽히는 선수 시절

문제는 선수 시절이 사회에서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기업 채용 시장은 학력, 어학 점수, 자격증을 기준으로 돌아간다. 수십 년간 갈고 닦은 체력, 극한의 압박을 견디는 정신력, 팀워크와 전략적 판단력—이런 역량은 이력서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다. 정리되더라도 채용 담당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지도자 진로는 대안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좁다. 학교·클럽·실업팀의 코치·감독 자리는 수요보다 공급이 압도적으로 많다. 체육 전공 교원 임용도 경쟁률이 치열하다. 결국 많은 은퇴 선수들이 운동 관련 직군의 문을 두드리다 포기하거나, 경비·배달·단순 서비스직으로 이직하는 경로를 밟는다. 선수 시절과의 낙차가 클수록 심리적 충격도 커진다.

해외는 어떻게 다른가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선수협회(PFA)를 통해 현역 시절부터 은퇴 이후 진로 설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재정 교육, 미디어 훈련, 직업 전환 코칭이 선수 계약에 사실상 묶여 있다. 미국 프로스포츠 리그들도 선수노조 차원에서 대학 학위 취득 지원, 창업 멘토링, 심리 상담을 패키지로 제공한다. 은퇴는 '사고'가 아니라 '준비해야 할 사건'으로 전제하는 구조다.

한국은 다르다. 일부 프로 스포츠 구단이 자체적으로 은퇴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체계성과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마추어·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그마저도 없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전직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나 인지도와 접근성 면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숫자는 바뀌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엘리트 체육의 구조 자체에 있다. 어린 나이부터 학업을 사실상 포기하고 훈련에 전념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은, 반대로 말하면 은퇴 이후의 삶을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선수를 메달 생산 도구로 소비하고, 경쟁력을 잃는 순간 방치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의 단서는 이미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 에이전시, 스포츠 마케팅, 스포츠 데이터 분석, 퍼스널 트레이닝 등 스포츠 산업의 외연이 넓어지면서 선수 경험이 실질적 자산이 되는 직군이 생겨나고 있다. 은퇴 선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창업 사례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의 돌파구에 그치느냐, 하나의 경로로 제도화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23.6세에 선수복을 벗는다. 그 뒤로도 인생은 50년이 넘게 남는다. 그 시간을 어떻게 설계할지를 선수 개인에게만 맡겨두는 한, 38%라는 숫자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