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 사진을 보면, 쉐벨 한 대 없이 사람들이 곡괭이로 산을 파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대한민국이 달렸다. 토목은 단순한 공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난을 이기려는 의지의 물질적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의 문법으로 지금의 세계를 설계하려 한다면, 그것은 지도 없이 우주선을 띄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026년 6월, 정부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비수도권에만 약 1,558조 원이 투입되고, 수도권을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는 약 4,700조 원에 달한다. 숫자가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라. 대한민국 1년 국가 예산의 열 배를 훌쩍 넘는 돈이다. 이 정도면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의 뼈대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물론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역대 정부마다 대형 개발 청사진을 내놓았고, 그 중 상당수는 예산 논란과 정권 교체 속에 흐지부지됐다. '삽질 경제'라는 비판어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콘크리트를 쏟아붓고 리본을 자르는 의식으로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허상임을 우리는 적잖이 목격해왔다. 이 비판은 정당하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 메가프로젝트가 과거의 토목 사업과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는 규모가 아니다. 지향이 다르다. 과거의 개발이 땅을 깎고 물길을 돌리는 것이었다면, 메가프로젝트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첨단 산업 생태계, 스마트 교통망, 탄소중립 기반시설의 유기적 결합이다. 다리 하나를 놓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리 위에서 어떤 데이터가 흐르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살 것인지를 설계하는 것이다. 콘크리트의 시대에서 플랫폼의 시대로. 그것이 '메가'라는 단어가 담아야 할 철학이다.
비수도권 1,558조 원이라는 숫자는 균형 발전의 언어로 읽힌다. 수십 년간 수도권에 인구와 자본이 집중되면서, 지방은 인프라가 남아도는데 사람이 없는 역설적 상황에 처했다. 이 메가프로젝트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지역에 물리적 시설을 심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모이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일자리, 교육, 문화, 생태. 이 네 가지가 없는 메가프로젝트는 비어있는 고속도로에 불과하다.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싼 또 하나의 과제는 시간이다. 이 규모의 사업은 한 정권의 임기 안에 완결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지는 국가 전략,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초당적 합의 구조가 선결되지 않으면, 4,700조 원이라는 숫자는 선거 포스터의 잉크로 그칠 수 있다. 로마의 수로가 천 년을 버틴 것은 황제가 바뀌어도 수로를 관리하는 원칙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목의 시대가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시대가 요구한 답이었다. 지금 시대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얼마나 크게 짓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짓느냐고. 4,700조 원짜리 청사진이 역사에 남으려면, 설계도 위에 숫자보다 먼저 철학이 적혀 있어야 한다.
메가프로젝트의 진짜 완공 날짜는 준공식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처음 아이가 태어나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