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모(74) 씨는 최근 수개월째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도심형 실버타운을 알아보고 있지만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평생을 살아온 서울을 벗어나기 싫고,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대형병원과 자녀들과의 거리 등을 고려해 도심형 주거지를 고집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대기 기간만 최소 3년에 달하는 데다 입주 보증금은 웬만한 아파트 전세가를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노후를 편안하고 품격 있게 보내고 싶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데도 들어갈 수 있는 방 한 칸이 없다"며 허탈해했다.
이처럼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대한민국에서 '도심형 실버타운'은 부유층의 전유물이거나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 오래다. 노인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들이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전문 주거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단순한 주거 공간 제공을 넘어 의료, 문화, 여가 서비스가 결합된 도심형 실버타운의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규제 완화와 민간 투자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은 '바늘구멍'… 0.1%도 못 품는 현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025만 6,782명에 달하며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명 선을 돌파했다. 전체 인구의 5명 중 1명이 고령층인 셈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등 관련 업계 자료에 따르면, 전국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의 입소 정원은 단 9,231명에 불과하다. 고령 인구 대비 수용률이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참담한 수준이다.
특히 고령층이 가장 선호하는 '도심형 실버타운'의 공급 가뭄은 더욱 심각하다. 과거에는 은퇴 후 한적한 교외나 시골로 내려가는 것이 유행이었으나, 최근의 고령층은 다르다. 이들은 우수한 의료 인프라, 편리한 교통,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도심에 머물기를 원한다. 자녀 및 지인들과의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하는 것도 도심을 선호하는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수요가 도심으로 집중되는 반면, 공급은 이를 전혀 따라가지 못해 극심한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촘촘한 규제 장벽과 높은 투자 리스크, 민간 참여 가로막아
도심형 실버타운 공급이 이토록 지체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촘촘한 규제 장벽과 민간 사업자의 투자 부담에 있다. 현행 노인복지법상 실버타운은 설립 및 운영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특히 지난 2015년 불법 분양과 투기 방지를 이유로 '분양형 실버타운' 제도가 폐지되고 오직 '임대형'만 허용되면서 민간 건설사와 시행사들의 개발 유인이 급격히 위축됐다. 분양을 통해 초기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하기 어려워지자 대규모 자본을 장기간 회수해야 하는 임대형 사업에 선뜻 나서는 기업이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높은 토지 가격과 건축비 상승도 큰 걸림돌이다. 도심 내 부지 확보 자체가 어려운 데다, 고령자 전용 주거 시설에 필수적인 무장애(Barrier-free) 설계와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려면 일반 공동주택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현행 구조에서는 대기업이나 금융 자본조차 선뜻 진입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결국 고비용 구조는 고스란히 높은 입주 비용으로 이어져 일반 서민이나 중산층 고령층에게는 문턱이 더욱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규제 패러다임 전환과 세제 혜택 등 입체적 지원책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만성적인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규제 완화와 제도적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도심 내 유휴 부지나 노후화된 공공건물, 대학 부지 등을 실버타운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용도 지역 변경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취득세, 재산세 등 세제 혜택을 강화하고 장기 저리 융자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나아가 고령층의 주거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 안전장치를 강화한 형태의 분양형 실버타운 재도입이나,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및 보험사 등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금력을 가진 금융 자본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제도 개선도 요구된다. 초고령사회에서의 노인 주거 문제는 단순한 복지의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중대한 과제다.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도심형 실버타운 공급의 숨통을 틔워줄 입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