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민연금이 기금 창설 3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익률을 찍었다. 수익률 18.82%, 한 해 벌어들인 수익금 231조 원. 숫자만 보면 축제 분위기여야 한다. 하지만 연금 재정을 다루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조용한 긴장이 흐른다. 수익률 신기록이 구조적 고갈 문제를 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금 운용 성과, 그 이면의 구조

올해 수익률 18.82%는 글로벌 주식 시장의 호황, 특히 미국 빅테크 중심의 상승장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결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은 기금의 절반 이상을 해외 자산에 배분하고 있어, 환율과 외국 증시 흐름에 연동된 수익 변동 폭이 크다. 실제로 2022년에는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기금이 80조 원 넘게 줄어든 바 있다. 1년 수익 231조 원은 인상적이지만, 해외 시장이 조정을 받으면 같은 규모의 손실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수익률의 '변동성'이 곧 기금 안정성의 한계다.

문제는 수익률보다 깊은 곳에 있다. 국민연금의 수입과 지출 구조 자체가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수는 줄고, 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20년대 중반부터 연평균 30만~40만 명씩 감소하는 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25년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보험료 납입 기반이 좁아지는 속도보다 연금 지급액이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

고갈 시계: 2055년 전후라는 경고

정부의 공식 재정 추계(5년 주기 재정계산)는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기금이 2055년 전후에 소진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보험료율 9%와 소득대체율 40%를 그대로 둔다는 가정 위에서다. 기금이 고갈되면 그해 걷히는 보험료만으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 시점에 필요한 보험료율은 30%를 훌쩍 넘는다는 추계도 나온다. 2025년의 231조 원 수익은 이 장기 적자 구조를 몇 년 늦출 수 있을 뿐, 방향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비교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보험료율 9%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약 18~19%)의 절반 수준이다. 독일은 18.6%, 스웨덴은 17.2%, 일본도 18.3%다. 낮은 보험료율에 상대적으로 후한 급여 구조가 결합된 결과가 지금의 재정 압박이다. 한국이 1988년 제도를 설계할 당시 합계출산율은 1.55였다.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5 수준으로 집계됐다. 제도의 전제가 통째로 무너진 셈이다.

개혁의 방향: 속도보다 방정식을 바꿔야

지속 가능한 연금을 설계하려면 보험료율 인상, 수급 개시 연령 조정, 소득대체율 재설정, 이 세 가지 변수를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는 것이 연금 재정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국회에서는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인상 속도와 폭, 세대별 부담 배분을 둘러싼 이견으로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

스웨덴은 1990년대 말 '명목 확정기여(NDC)' 방식을 도입해 기대수명이 늘면 연금액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독일은 보험료율 상한을 법으로 못 박는 대신 급여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지속 가능성 계수'를 운용한다. 두 나라 모두 핵심은 인구 변화와 재정 상태를 연금 지급 공식 안에 내장시킨 것이다. 한국의 구조는 아직 외부 충격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231조 원의 수익은 분명 기금에 숨통을 준다. 그러나 수익률 신기록이 개혁 논의의 긴박감을 낮추는 '착시'로 작용한다면, 그것이 더 큰 위험이다. 개혁을 1년 미룰 때마다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 가파른 기울기로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