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국수력원자력이 주도하는 팀코리아가 총 사업비 약 24조 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한국 원전 수출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15년 만의 쾌거이자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축제 분위기 이면에는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와의 고질적인 지식재산권(IP) 분쟁이라는 거대한 암초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어, 향후 최종 계약 체결과 추가 수출 전선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분쟁의 발단과 법적 쟁점: APR1400의 독자성 공방

갈등의 핵심은 한국형 차세대 원자로인 'APR1400'의 원천 기술 소유권이다.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이 자사의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제3국에 수출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은 미국 연방 규정 제10장 제810부에 따른 수출 통제권을 무기로 삼아, 한국의 독자적인 원전 수출을 제한해 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원전 개발 초기에는 미국 기술의 도움을 받았으나, 핵심 기술인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과 원자로냉각재펌프(RCP) 등의 국산화에 성공하며 원천 기술 자립을 완수했다고 맞서고 있다.

미국 법원의 1심 판결은 일단 한국의 판정승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복잡하다.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은 웨스팅하우스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수출 통제 법령의 집행 권한은 미국 정부에 있으며, 민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는 소송을 제기할 법적 권한(원고 적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기술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리는 본안 심리에 들어가지 않고 절차적 이유로 소송을 종결한 것이다. 따라서 웨스팅하우스가 항소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법적 분쟁을 이어갈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어 불확실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산업적 비교로 본 IP 장벽과 국가별 역학 관계

원전 산업에서의 지재권 분쟁은 단순한 기업 간의 이권 다툼을 넘어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의 양상을 띤다. 과거 반도체나 스마트폰 산업에서 후발 주자의 추격을 막기 위해 특허 소송을 전방위적으로 활용했던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프랑스의 프라마톰이나 러시아의 로사톰 같은 경쟁국들은 자국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수출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행보를 보이는 반면, 한국은 시공 역량과 가격 경쟁력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원천 기술의 '불완전한 독립'이라는 약점 때문에 수출 길목마다 제동이 걸리는 형국이다.

실제로 관련 업계에 따르면, 원전 수출은 국가 간 외교 및 안보 동맹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미국은 자국의 원자력 기술이 제3국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보 리스크와 자국 산업 보호를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 한국이 체코에 이어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 추가 수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와의 원자력 협정 틀 안에서 웨스팅하우스와의 상업적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기술적 자립뿐만 아니라 고도의 외교적 협상력이 필요한 이유다.

시사점과 전망: 기술 주권 확보가 곧 원전 영토다

이번 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시공 능력과 공기 준수율이라는 제조·건설 분야의 강점만으로는 글로벌 원전 시장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식재산권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확보되지 않는 한, 아무리 뛰어난 수주 실적을 올려도 로열티 지급이나 수출 제한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향후 체코 원전의 최종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과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원천 기술의 완전한 자립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투자가 지속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현재 개발 중인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 분야에서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100% 독자 기술과 특허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대형 원전의 지재권 갈등을 반면교사 삼아, 미래 원전 시장에서는 기술 종속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원전 수출 영토의 확장은 단순히 영토의 크기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유한 기술 주권의 크기를 넓히는 일과 다름없다.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한 팀이 되어 원천 기술 자립과 전략적 지재권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