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물바다가 된 도심, 장화를 신고 수해 현장을 찾는 정치인들,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역대급 폭우'라는 천재지변론이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말하면서도 정작 수해가 발생하면 하늘만 원망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심술일 뿐일까. 매년 반복되는 재난을 매번 '이례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준비 부족을 가리기 위한 가장 편리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자연재해로 인한 총 피해액은 무려 3조 원에 달한다. 이 천문학적인 액수는 단순히 무너진 도로를 보수하고 침수된 차량을 보상하는 데 쓰인 사후 비용의 일부일 뿐이다. 재난이 남긴 시민들의 일상 붕괴와 사회적 비용까지 합산한다면 실제 피해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사후 복구에는 매년 수조 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왜 예방을 위한 선제적 인프라 투자에는 늘 예산 타령을 하며 주저하는지 의문이다.

도시의 물그릇을 키우는 선제적 방재 인프라의 효과는 이미 현장에서 증명된 바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의 한 상습 침수 구역에 구축된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이다. 이 시설은 착공 후 7년 만인 2020년 5월 완공되어 가동을 시작했다. 완공 이후 해당 지역은 과거의 오명이 무색할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 속에서도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 거대한 물길을 내는 대심도 터널이 도시의 생명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물론 대심도 터널과 같은 대형 방재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예산과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과잉 투자라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후 위기 시대의 방재는 단순한 '가성비'의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지난 10년간 흘려보낸 3조 원의 재해 피해액과 비교해 본다면, 선제적 인프라 확충은 오히려 가장 경제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처방으로는 매년 강해지는 극한 호우를 결코 감당할 수 없다.

이제 도시 방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재난이 지나간 자리를 쓸고 닦는 '복구 중심'에서, 재난이 도시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선제적 예방'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타협을 권하지 않는다. 하늘이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없다면, 도시가 그 비를 온전히 품어낼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안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