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한 영상이 틱톡 알고리즘을 뚫었다. 리센느 멤버들이 부산 사투리로 주고받는 30초짜리 클립. 댓글창은 "이게 뭐야"와 "또 봤다"로 뒤섞였고, 조회수는 사흘 만에 300만을 넘겼다. K팝 신인 중 단일 밈 콘텐츠로는 그해 최고 참여율이었다. 소속사 스타트업 엔터테인먼트의 임직원 수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이 사건은 단순한 '바이럴 성공담'이 아니다. 수십억 원짜리 뮤직비디오도, 대형 플랫폼 계약도 없었다. 있었던 건 지역 정서를 콘텐츠로 번역하는 감각, 그리고 빠른 실행이었다. K팝 마케팅의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로컬 밈, 팬덤의 문법을 바꾸다

스타트업 엔터테인먼트는 2023년 10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전략의 뼈대를 공개했다. 「지역 밈과 로컬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 팬덤 확장에 성공했다」는 문장 하나였지만, 업계는 이를 가볍게 읽지 않았다. 같은 해 한국음악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 기획사들이 로컬 밈 기반 마케팅에 배정하는 예산 비중이 평균 3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방색은 '극복해야 할 것'이었다. 지금은 '무기'다.

리센느 멤버 김하늘은 한 인터뷰에서 「지역 밈을 활용해 팬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발음 억양 하나가 친밀감의 통로가 된다는 뜻이다. 표준어·무국적 이미지로 포장하던 K팝의 관성에 균열이 생긴 지점이 바로 여기다. 닐슨코리아 미디어 리포트는 2023년 10월 기준 대형 기획사 대비 중소 기획사의 SNS 참여율이 15%포인트 높다고 분석했는데, 그 격차의 상당 부분이 이처럼 '날 것의 지역성'에서 비롯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숫자가 말하는 것—구독자 50만의 의미

2023년 11월, 리센느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50만을 돌파했다. 수치 자체보다 맥락이 중요하다. 데뷔 후 단기간에 도달한 이 숫자는 대형 기획사 신인들도 쉽게 넘지 못하는 구간이다. 같은 시기 리센느 관련 SNS 해시태그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250% 증가했다. 광고비가 만든 숫자가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알고리즘이 밀어준 것도 아니다. 팬들이 직접 콘텐츠를 퍼 날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3년 12월 발간한 '로컬 밈 활용 K팝 마케팅' 사례 연구 보고서에서 리센느를 중소 기획사 성공 모델로 공식 선정했다. 정부 산하 기관이 특정 신인 그룹의 마케팅 방식을 사례집에 올린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이 보고서는 사실상 업계에 하나의 물음을 던진 셈이다. '대형 기획사의 방식만이 정답인가.'

K팝 마케팅의 다음 판—누가 이 문법을 쓸 것인가

리센느의 사례가 증명한 건 '지역성이 통한다'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진정성 있는 로컬 코드가 글로벌 팬덤의 언어와 의외로 잘 결합된다는 것이다. 부산 사투리 챌린지가 국내에서만 퍼진 게 아니라는 점, 해외 팬 커뮤니티에서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재밌다'는 반응을 끌어냈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물론 이 모델이 누구에게나 복제 가능한 건 아니다. 지역 정서를 소비 가능한 콘텐츠로 변환하는 편집력, 역풍을 감수할 수 있는 기민한 실행력, 그리고 팬과의 즉각적 피드백 루프—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밈은 마케팅이 된다. 자본이 부족한 중소 기획사에겐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기도 하다. 결정이 빠르고, 실험에 두려움이 덜하기 때문이다.

K팝 시장에서 대형 기획사의 자본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그러나 팬덤은 점점 더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을 찾는다. 리센느가 부산 사투리 한 마디로 열어젖힌 문은, 다음엔 어느 신인이, 어느 지역의 어떤 언어로 밀고 들어올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