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2025년 12월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한 2026년도 정부 R&D 예산은 총 35조 5,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2025년도의 29조 6,000억 원 대비 대폭 증액된 규모로, 과학기술계의 우려를 씻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하지만 예산의 양적 복원에 안도할 때는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재정 투입의 확대를 넘어, 고질적인 비효율을 걷어내고 국가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릴 '질적 혁신'이다.

본지는 R&D 예산의 단순 증액을 넘어, 미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도전적 연구 지원과 고질적인 예산 낭비 구조를 개혁하는 '투 트랙 전략'을 강력히 주문한다. 예산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쓰임새다. 과거처럼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안전한 과제에만 예산을 나눠주는 방식으로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첫째, 실패를 용인하는 '도전적·모험적 R&D'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그동안 국내 R&D는 성공률 90%가 넘는 안전한 연구에 안주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파괴적 혁신 기술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에서만 탄생한다. 정부는 신진 연구자들이 초격차 기술 개발에 뛰어들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하고, 평가 기준을 단기 성과에서 장기적 영향력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둘째, R&D 현장의 고질적인 예산 낭비 구조와 '나눠먹기식' 소액 과제를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R&D 예산이 일부 기득권 연구 그룹의 보조금처럼 전락해서는 안 된다. 유사·중복 사업을 철저히 통폐합하고, 국가 전략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확고히 서야 한다. 예산 투명성을 높이고 성과 검증 체계를 다지는 일도 필수적이다.

셋째, 글로벌 공동 연구 활성화와 민간 협력 체계의 고도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의 고립은 곧 도태다. 해외 유수 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장려하되, 실질적인 기술 이전과 인적 교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정교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기초·원천 분야에 정부 재정을 집중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35조 5,000억 원은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국가의 미래 밑천이다. 이 재원이 관행적인 배분과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낭비된다면 우리 과학기술의 미래는 없다. 정부와 과학기술계는 이번 예산 확정을 뼈를 깎는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도전과 개혁이 양수거장을 이룰 때, 비로소 대한민국 R&D는 선도형으로 도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