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 매장 앞, 70대 초반의 한 노인이 키오스크 화면을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뒤에는 서너 명이 무표정하게 줄을 서 있다. 결국 주문을 포기하고 카운터를 찾지만, 직원은 없다. 이 장면은 특정 매장의 일화가 아니다. 전국 수만 개의 무인 주문 단말기 앞에서 매일 반복되는 풍경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6년 3월 발표한 '2025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 종합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71.8%에 그쳤다. 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 등 다른 취약계층과 비교해도 가장 낮은 수치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90%를 넘어서고 공공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앱과 웹으로 이전된 시대에,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수백만 명의 일상이 막혀 있다는 신호다.
디지털이 '기본'이 될수록, 아날로그는 '특권'이 된다
은행 창구가 줄고, 기차표는 앱으로 사야 하며, 병원 예약은 모바일로만 가능한 경우가 늘고 있다. 정부 민원 서비스도 온라인 창구를 우선순위로 두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는 오히려 접근성이 좁아지는 역설이 생긴다.
문제는 속도다. 기술 전환은 빠르고, 적응 지원은 느리다. 지역 도서관이나 복지관에서 스마트폰 사용법 강좌를 열지만, 수강 인원은 제한적이고 커리큘럼은 기기 조작 중심에 머문다. 키오스크 주문, 모바일 뱅킹, QR 인증처럼 실생활에서 매일 부딪히는 상황을 반복 훈련하는 체계는 아직 드물다. 배운다고 해도 기기나 앱이 업데이트되면 인터페이스가 바뀌고, 다시 낯선 화면 앞에 서야 한다.
기술이 맞춰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해외에서는 다른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영국 일부 지방정부는 고령층이 자주 이용하는 공공시설에 '디지털 안내 도우미'를 상시 배치하고, 키오스크에 고대비 화면·큰 글씨·음성 안내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조달 기준을 바꾸고 있다. 일본은 편의점 체인과 협력해 고령 고객이 직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용 버튼을 단말기에 탑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기술을 배우지 못한 사람을 탓하는 대신, 기술 자체가 더 넓은 사람을 포용하도록 설계를 바꾼 것이다.
국내 제조사와 플랫폼 기업들도 고령 친화 모드, 간편 인터페이스 등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선택 옵션이다. 기본 설정이 아닌 이상, 스스로 설정을 바꿀 줄 아는 이용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배려형 기술이 진짜 배려가 되려면, 처음부터 기본값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프라인을 지우지 말아야 할 이유
디지털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과 오프라인 창구를 유지하는 것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그러나 비용 절감을 이유로 두 가지가 맞바꿔지는 경우가 잦다. 은행 지점 수가 줄고, 무인 편의점이 늘고, 공공기관 창구 인력이 감소할 때, 그 영향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디지털 도구 없이는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고령층 인구는 2025년 현재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이들이 금융, 의료, 교통, 행정 서비스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된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결함이다. 디지털 전환의 속도를 늦추자는 말이 아니다. 전환이 빠를수록, 뒤처지는 이들을 붙잡는 장치도 그만큼 촘촘해야 한다는 뜻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포기하고 돌아서는 노인의 뒷모습. 그것이 지금 이 사회가 기술에게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