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배우 열 명 중 세 명 이상이 심야 촬영으로 학습권을 침해당했다고 답했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 8월 발표한 조사 결과다. K-드라마·K-영화가 글로벌 플랫폼을 장악하는 동안, 그 콘텐츠를 채운 아역 배우들의 노동 환경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규정은 있지만, 위반은 늘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22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역 배우 심야 촬영 제한 규정 위반 건수는 2021년 대비 15% 증가했다. 규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제작 일정은 촉박하고, 납기 압박은 현장 관행을 바꾸기 어렵게 만든다. 위반이 반복되는 구조적 이유다.

이 격차는 국제 비교에서 더 뚜렷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2021년 기준 아역 배우의 심야 촬영을 오후 10시 이전으로 법으로 못 박고 있다. 단순한 가이드라인이 아닌 법적 강제 규정이다. 국내 현행 체계는 업계 자율과 방송사 내규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어, 실효성의 한계가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현장은 조금씩 바뀌는 중이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다. KBS는 2022년 9월 아역 배우 촬영 스케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제한하는 내부 규정을 도입했다. CJ ENM도 2023년 3월 내부 보고서를 통해 심야 촬영이 아역 배우의 건강 문제와 학업 지연으로 이어진다고 공식 확인하며, 제작 현장 내 심야 촬영 제한 강화 기조를 밝혔다.

같은 해 5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촬영시간 제한 및 교육 지원 가이드라인을 공식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과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년 11월 아역 배우를 위한 맞춤형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설계해 2023년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제도의 외형은 갖춰지고 있다.

그러나 수치는 냉정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년 4월 발표한 K-콘텐츠 산업 실태조사에서 아역 배우의 60% 이상이 학습권 보장 관련 제도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가이드라인이 나오고 시범 프로그램이 시작됐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거리가 여전히 멀다.

구조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반복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아역 배우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명확히 보장받는 법적 지위를 갖추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성인 배우와 달리, 미성년 노동자에게는 촬영 시간 제한·교육권 보장·보호자 동반 의무 등이 법률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자율 가이드라인은 제작사가 바쁠수록 뒷전으로 밀린다.

K-콘텐츠 산업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그 산업이 미성년 노동자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국제적 시선도 함께 높아진다.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과 그것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 한국이 가진 건 전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