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조 단위 수출 잭팟을 터뜨리며 글로벌 방산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K-방산이 새로운 분기점에 섰다. 폴란드, 호주, 중동 등지에서 거둔 대규모 수주 낭보는 고무적이지만, 이제는 '판매' 이후의 거대한 시장인 유지·보수·정비(MRO) 영역으로 시선을 넓혀야 할 때다. 무기체계의 특성상 한 번 도입되면 수십 년간 운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진정한 방산 강국으로의 도약은 MRO 시장의 선점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의 분석에 따르면, 무기체계를 실제 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MRO 비용은 전체 수명주기 비용(LCC)의 약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초기 무기 도입 비용은 전체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무기 수출이 끝이 아니라, 수출액의 두 배가 넘는 거대한 후속 주기 시장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수출 강국을 넘어 '운영·유지' 강국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수출 강국을 넘어 '수명주기 파트너'로

글로벌 방산 선진국들은 이미 MRO 사업을 단순한 사후 서비스가 아닌 핵심 수익 모델이자 전략적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탑티어 방산 기업들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장기 MRO 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확보한다. 반면 한국 방산업계는 그동안 '우수한 가성비'와 '빠른 납기'를 무기로 하드웨어 수출 자체에 집중해 왔다. 이제는 이러한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다.

수출된 K9 자주포나 FA-50 경공격기 등이 현지에서 원활히 가동되도록 돕는 MRO 역량은 고객국과의 신뢰를 다지고 추가 수출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끈이 된다. 무기를 판매한 뒤 후속 군수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브랜드 가치는 급락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철저한 수명주기 관리를 제공한다면, 고객국을 장기적인 '록인(Lock-in)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

글로벌 거점 구축과 현지화 전략의 시급성

MRO 영토 확장의 핵심은 '현지 거점화'에 있다. 무기체계의 정비 주기를 단축하고 가동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수출국 현지 또는 권역별 정비창 구축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유럽의 허브인 폴란드나 아시아-태평양의 거점인 호주 등에 현지 MRO 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정비 편의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지 일자리 창출과 기술 이전을 동반함으로써 수입국의 안보 자립을 돕는 상생 모델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는 단순 무기 구매를 넘어 현지 생산 및 MRO 역량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현지 파트너사와의 합작법인 설립 등을 통해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도 유효하다.

'K-방산 2.0'을 위한 디지털 MRO 생태계

향후 MRO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윈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MRO'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상태기반정비(CBM+) 기술을 적용해 부품의 고장 주기를 미리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정비하는 시스템은 K-방산의 또 다른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는 정비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무기가 될 것이다.

정부 역시 방산 수출 지원 정책의 패러다임을 MRO 중심으로 확장해야 한다. 군의 정비 노하우를 민간 기업과 공유하고, 수출 금융 지원 대상에 MRO 사업을 포함하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 K-방산이 단발성 흥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글로벌 일류 산업으로 안착하기 위해, 70%의 숨겨진 영토인 MRO 시장으로의 진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