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 '검객(劍客)'에는 "이 칼을 10년 동안 갈았으나, 아직 그 날카로움을 시험해보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다. 글로벌 무대를 호령하는 K콘텐츠의 창작자들 역시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검을 갈아온 이들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 검이 천하를 뒤흔들 만큼 눈부신 빛을 발했을 때, 그 영광의 무게는 정작 검을 벼린 이들의 어깨 위에 온전히 놓이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 뒤편, 어두운 그늘 속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창작자들의 현실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2021년 전 세계를 휩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1이다. 제작비 약 253억 원이 투입된 이 작품은 수조 원에 달하는 가치를 창출하며 글로벌 플랫폼의 위상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하지만 정작 이 경이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 창작자들에게 돌아간 것은 최초 계약 당시의 제작비와 미미한 보너스가 전부였다. 저작재산권을 플랫폼이 독점하는 이른바 'IP(지식재산권) 매입' 구조 속에서, 창작자는 자신이 낳은 아이의 성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인 이방인으로 남아야 했다.
물론 글로벌 플랫폼의 전액 제작비 지원 방식은 자금력이 부족한 국내 중소 제작사들에게 매력적인 돌파구다. 실패의 위험을 플랫폼이 전적으로 떠안는 대신, 창작자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시장의 차가운 생리를 감안할 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원칙에 따라 모험 자본을 댄 플랫폼이 거대한 결실을 독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플랫폼의 유통망이 없었다면 K콘텐츠가 이토록 빠르게 지구촌 구석구석에 닿지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합리적인 거래의 이면에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치명적인 균열이 숨어 있다.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단순한 임가공 기지로 전락할 때, 그 생태계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지를 비옥하게 가꾸지 않고 열매만 따 먹는 농부는 결국 황폐해진 땅을 마주하게 된다. 플랫폼과의 협업이 단순한 '하청' 관계로 고착화된다면, 우리 창작 생태계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상생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생존을 위한 냉철한 투자다.
이제는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정당한 보상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미 유럽연합(EU)은 디지털 단일시장 저작권 지침을 통해 창작자에게 '적절하고 비례적인 보상'을 받을 권리를 명문화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이를 자국법에 반영해 플랫폼의 독점적 수익 구조에 제동을 걸고 있다. 우리 역시 저작권법 개정 등을 통해 창작자가 저작권을 양도한 이후에도 작품이 거둔 상업적 성공에 상응하는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하나의 거대한 참나무가 홀로 숲을 이룰 수는 없다. 그 아래 이름 없는 풀꽃들과 이끼가 공존할 때 비로소 숲은 생명력을 얻는다. K콘텐츠라는 찬란한 숲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뿌리에 마르지 않는 수분을 공급하는 상생의 법제화가 절실하다. 가장 눈부신 꽃일수록, 그것을 피워낸 보이지 않는 뿌리의 노고를 기억해야 한다.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의 화려함보다, 그 불꽃을 쏘아 올리기 위해 어둠 속에서 화약을 다듬던 이들의 거친 손끝을 보듬는 사회가 진정 성숙한 문화 강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