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친환경 에너지를 많이 생산하더라도 이를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현재 대한민국 전력 인프라가 직면한 냉혹한 현실이 바로 그러하다. 동해안의 원전과 호남의 태양광 발전설비가 쉼 없이 돌아가도, 정작 전력 소비의 심장부인 수도권으로 보낼 송전선로가 턱없이 부족해 발이 묶여 있다. 이는 단순한 전력 수급의 불균형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을 요구받는 우리 수출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는 국가적 생존 위기로 번지고 있다.

송배전망 부족 사태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경고음은 이미 도처에서 울리고 있다. 전력 당국에 따르면 호남 지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는 급증했으나, 송전망의 한계로 인해 강제로 발전을 중단하는 '출력 제어' 조치가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에너지를 생산하고도 버려야 하는 이 황당한 역설은 전력망 확충이 발전 설비 증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전형적인 동맥경화 현상이다. 전력망 건설이 지연될수록 친환경 에너지 전환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치명적인 타격이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첨단 산업단지는 막대한 양의 전력을 필요로 하며, 글로벌 고객사들은 이들 제품이 재생에너지로 생산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RE100을 이행하지 못하면 수출길이 막히는 것이 오늘날의 냉혹한 무역 질서다. 결국 송배전망 부족은 단순한 인프라의 부재가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강력한 비관세 장벽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고질적인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이 시급하다. 현재의 전력망 건설 체계로는 주민 수용성 확보와 복잡한 인허가 절차 등으로 인해 송전탑 하나를 세우는 데 평균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인허가 절차를 대폭 단축하며, 주민 지원을 현실화하는 특별법 없이는 첨단 산업단지가 가동되는 시점까지 필요한 전력망을 적기에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전력망은 국가 경제의 대동맥이자 첨단 산업 시대를 달리기 위한 필수 인프라다. 도로와 철도가 물류를 나르듯, 전력망은 미래 산업의 쌀인 에너지를 수송하는 고속도로다. 정치권은 전력망 확충을 정쟁의 도구로 삼거나 후순위로 미뤄서는 안 된다. 국회와 정부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전력망 특별법을 신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친 뒤에 치러야 할 대가는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