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평생을 커다란 통 하나와 물바가지 하나만으로 살아가며 '단 하나의 필요'만을 좇았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소원을 묻자, 그저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답했던 그의 일화는 물질의 과잉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의 열기가 가라앉은 자리에, 디오게네스의 통을 닮은 실용주의 소비 트렌드, 바로 '요노(YONO·하나만 있으면 된다)'가 들어서고 있다.

한때 청년층의 소비는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주문 아래 화려하게 불타올랐다. 고가의 명품을 사고, 최고급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며 이를 소셜미디어(SNS)에 전시하는 것이 시대의 멋이자 개성의 표현으로 통했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이 요동치고 고물가의 파고가 일상이 된 지금, 청년들은 더 이상 내일의 안녕을 담보로 오늘의 사치를 사지 않는다. 과시적 소비의 거품이 걷힌 자리에 꼭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극도의 실용주의가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심리적 위축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지표로 확인된다. 최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발표한 '2025년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4세에서 69세의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내년도 소비 지출을 줄이거나 극도로 효율화하겠다는 응답이 지배적이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이른바 '소비 수축'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고착화되는 저성장 국면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조적 체질 개선의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요노 트렌드를 두고 청년 세대의 빈곤과 무기력을 보여주는 서글픈 자화상이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소비할 여력이 없어 강제로 지갑을 닫는 '불황형 불소비'에 불과하며, 이는 결국 내수 침체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청년들의 주체적인 선택을 간과한 것이다. 요노는 단순히 돈이 없어 굶주리는 소극적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주입한 가짜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단 하나'에 집중하겠다는 적극적인 삶의 재구성이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내면의 실리를 택한 현명한 성찰에 가깝다.

고환율이라는 차가운 칼바람은 청년들에게 허영의 외투를 벗겨내는 대신, 실속이라는 단단한 내의를 입혔다. 과거의 욜로가 미래의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현재를 낭비하는 '도피적 낙관주의'였다면, 지금의 요노는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적 낙관주의'다. 불필요한 열 가지를 버리고 가장 빛나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마치 겨울을 앞두고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려 수분 손실을 막는 고목의 지혜를 닮았다.

이제 소비는 더 이상 신분을 증명하는 명함이 아니다. 화려한 축제가 끝난 무대 위에서 청년들이 찾아낸 것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조명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단 하나의 촛불이다. 비록 지갑은 가벼워졌을지언정, 삶의 무게중심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청년들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단단하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그들이 피워 올린 실용주의의 불꽃은 더욱 시리지 않게 타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