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수입 전기차 화재는 단순한 차량 전소 사고를 넘어 우리 사회에 거대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고로 지하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약 880대가 전소되거나 파손되고 그을음 피해를 입었으며, 주민들이 대피하고 단수·단전 사태가 이어지는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전기차의 안전성 문제를 대중의 일상적 불안으로 격상시켰고, 정부와 산업계에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강력한 도화선이 되었다.

밀폐된 지하 공간이 키운 공포와 구조적 한계

전기차 화재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이토록 빠르게 확산된 원인은 한국 특유의 주거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토교통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공동주택의 주차장 중 상당수가 지하에 위치해 있으며, 전기차 충전 시설 역시 지하 공간에 집중되어 있다. 밀폐된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배터리의 '열폭주' 현상이 발생할 경우, 소방차 진입이 어렵고 열과 유독가스가 배출되지 않아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통계적으로 전기차의 화재 발생 비율이 내연기관 차량보다 절대적으로 높지는 않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내연기관 차량 화재와 달리 전기차 화재는 진압에 수 시간이 소요되고, 인접 차량으로의 연쇄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체감하는 위험도는 판이하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한계와 진압의 어려움이 결합되면서, 전기차 구매를 기피하는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배터리 실명제' 도입, 깜깜이 정보에서 소비자 권리로

사태 해결을 위한 핵심 카드로 부상한 것이 바로 '배터리 실명제(정보 공개 의무화)'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전기차를 구매하면서도 정작 차량 가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제조사나 구체적인 스펙을 알기 어려웠다. 제조사들이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배터리 정보를 비공개로 부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라 화재 사고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 정보가 알려지는 과정에서 투명한 정보 공개의 필요성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시장 역시 이미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026년부터 배터리의 생산·이용·폐기 등 전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해 관리하는 '배터리 여권(Battery Passport)'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한국의 배터리 실명제 도입 추진은 이러한 글로벌 표준에 발맞추는 동시에, 국내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분석된다.

단순 정보 공개를 넘어선 실효적 안전 인프라 구축 필요

전문가들은 배터리 실명제가 전기차 포비아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배터리 제조사를 아는 것만으로는 화재 자체를 예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 공개와 함께 충전 시설의 안전 기준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입체적인 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과충전을 방지할 수 있는 '스마트 제어 충전기'의 보급 확대가 시급하다. 배터리 상태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과충전을 사전에 차단하는 기술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지하 주차장의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 기준을 강화하고, 화재 발생 시 인접 차량으로 열이 전달되는 것을 막는 방화벽 설치 등 물리적 안전장치 마련도 필수적이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의 정밀도를 높여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차주와 소방 당국에 즉각 전송하는 시스템 구축도 검토가 필요하다.

결국 전기차 포비아의 극복은 기술적 투명성과 제도적 안전망이 결합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배터리 실명제를 통해 제조사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충전 인프라의 안전성을 내연기관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위기를 한국 전기차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