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논란을 바라볼 때 우리는 흔히 청년 세대의 이기주의나 노년 세대의 고집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곤 한다. 청년들이 연금 개혁에 냉소적인 진짜 이유는 매달 내는 보험료 몇만 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과연 내가 늙었을 때 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불신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안이 오히려 갈등의 도화선이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의 구상은 나이가 많은 장년층은 빠르게, 청년층은 천천히 보험료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청년 세대를 배려한 정교한 설계처럼 보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난 9월 발표된 조원씨앤아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대별 차등 인상안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7.4%로 과반을 기록했다. 혜택의 당사자인 청년층마저 이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혜택을 빙자한 갈라치기가 세대 간 선을 긋는 악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연금의 본질은 세대 간 '사회적 연대'다. 앞선 세대를 부양하고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넘기는 약속의 고리다. 그러나 세대별로 부담률을 달리 적용하는 순간, 연금은 공동체의 약속이 아닌 세대 간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된다. "너희는 적게 내니 덜 가져가라"거나 "우리는 많이 내니 억울하다"는 식의 감정적 소모전만 부추길 뿐이다. 제도의 기술적 미세조정으로 갈등을 무마하려 한 시도가 오히려 갈등을 공식화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청년층의 신뢰를 얻는 길은 요율 우대라는 임시방편에 있지 않다. 더 본질적이고 확실한 '국가의 약속'이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 보장을 법률로 명문화하는 일이다.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국가가 책임지고 지급한다는 선언이 있어야 청년들도 미래를 믿고 현재 소득을 양보할 수 있다. 여기에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극대화해 수익률을 높이는 구조적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연금 개혁은 단순히 재정 수지를 맞추는 수학 공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고도의 사회적 합의다. 세대를 갈라치는 미봉책으로는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청년의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는 개혁은 결국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 정부와 정치권은 눈앞의 표 계산을 접고, 세대 간 신뢰를 복원할 수 있는 정공법을 택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