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전쟁을 스크린 너머의 연출된 비극처럼 소비하곤 한다. 복잡한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따지며 어느 쪽이 '선'이고 '악'인지 논쟁하는 사이, 정작 포화 속에서 바스러지는 평범한 일상은 지워진다. 하지만 전쟁의 가장 참혹한 진실은 승패가 아닌, 아무런 잘못도 없는 민간인들이 치르는 대가에 있다. 중동의 화약고가 다시 불타오르는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비극은 정말 우리와 무관한 남의 나라 일일 뿐인가.
중동의 무력 충돌이 격화될 때마다 국제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만, 이내 자국의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난민 수용을 기피하고 인도적 지원을 시혜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전쟁이 초래한 민간인 피해와 대규모 난민 사태는 특정 지역의 불운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의 책임이다. 분쟁을 방지하지 못한 국제 질서의 실패를 무고한 이들의 삶으로 메우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적 지원은 여유가 있을 때 베푸는 자선이 아니라,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다. 국경을 넘어 신음하는 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결국 국제사회의 도덕적 파산을 의미한다. 인도적 위기를 외면한 평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며, 난민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일과 같다. 이제는 '국익'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구태의연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대한민국 정부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정부는 지난 2025년 8월 28일, 팔레스타인 정부와 협력하여 국제아동기금(UNICEF),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가자지구 긴급구호 사업에 총 3,000만 달러(약 440억 원)를 공여했다. 이는 단순히 재정적 원조를 넘어, 중동의 아픔이 우리의 책임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책임감 있는 연대의 실천으로 평가받는다.
중동의 위기는 오늘날 국제사회가 직면한 윤리적 시험대다. 타인의 비극을 방관하는 공동체는 스스로의 위기 앞에서도 고립될 수밖에 없다. 포화가 멈춘 자리에서 인류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총칼의 힘이 아닌, 국경을 넘는 인도주의적 연대가 필요하다. 지금 가자지구의 아이들이 흘리는 눈물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국제사회의 품격이자 공존의 열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