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광장 아고라는 토론의 장이었으나, 때로는 선동가들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취해 이성을 잃곤 했다.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매혹적인 노래에 홀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돛대에 묶었듯, 민주주의는 늘 열정이라는 파도 속에서 이성이라는 닻을 필요로 해왔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를 뒤흔드는 '팬덤 정치' 역시 이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의 기로에 서 있다. 지지자들의 뜨거운 에너지가 정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 열기가 과해질 때 의회 민주주의의 근간인 타협과 절충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팬덤 정치를 무조건적인 병리 현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과거 소수 엘리트들이 밀실에서 좌우하던 정치를 광장으로 끌어내고,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의 주역으로 참여하게 만든 동력은 분명 긍정적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후원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저변을 넓히는 건강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정치인과 시민 사이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정치적 효능감을 높였다는 점은 팬덤 정치가 거둔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자발적 참여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오늘날의 팬덤 정치는 점차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극단적 진영 논리로 변질되고 있다. 내 편의 허물은 무조건 덮고, 상대 편의 티끌은 태산처럼 부풀리는 맹목성은 합리적 토론이 설 자리를 빼앗는다. 의회 민주주의의 본질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하는 데 있지만, 팬덤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은 타협을 '배신'으로, 독단을 '소신'으로 포장하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 대립의 대가는 가혹하다. 한 국책연구기관이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 조사에 따르면, 관련 지표를 9개년 평균한 결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각각 30위와 22위에 그쳤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진원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성적표다. 팬덤의 환호에 취한 정당들은 중도층의 합리적 목소리를 외면한 채, 극단적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언사와 대결 구도만을 생산해내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가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뜨거운 열정과 함께, 냉철한 균형감각과 책임감을 꼽았다. 신념만을 앞세우고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정치는 선동에 불과하다는 경고다. 지금 우리 정당들은 팬덤이라는 '달콤한 마약'에 중독되어 스스로 생각하고 타협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야 한다. 공천권을 쥔 극단적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있는 목소리는 숨죽이고, 정당의 다양성은 질식해가고 있다.
이제 정치는 광장의 소음에서 벗어나 의회의 정적 속에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지자들의 열정을 수용하되, 그것이 민주적 절차와 상대에 대한 존중을 넘어설 때 단호히 선을 그을 수 있는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 정당 역시 극단적 팬덤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제도적 방어벽을 구축하고, 다양한 합리적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복원해야 할 시점이다.
정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예술이다. 밤하늘의 별이 아름다운 것은 어둠 속에서 저마다의 빛을 발하기 때문이지, 하나의 거대한 불꽃이 다른 빛을 모두 삼켜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광장의 뜨거운 열기가 차가운 이성의 강물과 만나 비로소 민주주의라는 대지를 적실 때, 우리 정치는 비로소 성숙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