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외곽의 한 주거 단지. 70대 후반의 김 씨는 매달 연금을 찾기 위해 버스를 두 번 갈아탄다. 가장 가까운 은행 지점까지 40분. 예전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지점이 있었다. 3년 전 문을 닫았다. 스마트폰으로 이체를 하라는 자녀들의 말은 알아듣겠는데,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춘다.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모른다는 게 아니라, 눌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가 두렵다.

그 두려움을 수치로 환산하면 이렇다. 5대 시중은행의 국내 영업점은 2025년 말 기준 3748개로, 전년보다 94개 줄었다. 2023년 이후 신규 개점은 단 한 건도 없다. 감소는 단선적이고 일관됐다. 지점이 하나씩 닫힐 때마다, 모바일 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한 명이 금융 시스템 바깥으로 한 발씩 밀려나는 구조다.

디지털 전환이 만든 '보이지 않는 장벽'

은행들이 점포를 줄이는 논리는 분명하다. 비대면 거래 비중이 전체의 90%를 넘어선 상황에서 고비용 오프라인 인프라를 유지할 경영적 이유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바일 뱅킹 이용 건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그 90%의 이면에 존재하는 10%다. 고령층, 장애인, 디지털 기기에 접근이 어려운 저소득층이 그 숫자 안에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모바일 금융 서비스 이용률은 전체 평균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단순히 기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인증 절차, 보안 카드, 공동인증서 갱신 같은 단계들이 중첩되며 실질적 진입 장벽이 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술적 배제」가 아닌 「설계적 배제」로 본다. 시스템이 특정 사용자를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피해는 단순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공과금 자동이체 오류를 스스로 수정하지 못해 연체 기록이 생기거나,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고도 즉각 신고 경로를 찾지 못하는 사례가 금융감독 당국에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금융 소외는 신용 리스크로, 신용 리스크는 생활 불안으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를 형성한다.

해외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영국은 2023년 '금융서비스·시장법'을 개정해 은행이 지점을 폐쇄할 때 지역 금융 접근성 영향 평가를 의무화했다. 평가 결과에 따라 공동 지점 운영이나 우체국 금융 서비스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일본은 지방 고령 인구 밀집 지역에 이동형 금융 서비스 차량, 이른바 「금융 버스」를 운행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어느 나라도 디지털 전환 자체를 막지는 않는다. 다만 전환의 속도가 취약 계층의 적응 속도를 앞질러선 안 된다는 원칙을 제도로 못 박고 있다.

한국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 방안을 논의해왔지만, 구속력 있는 규정보다는 권고 수준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일부 은행이 고령자 전용 창구나 큰 글씨 ATM을 도입했으나, 지점 폐쇄 속도에 비하면 산발적 대응에 가깝다.

포용 금융, '착한 캠페인'이 아닌 인프라의 문제

포용 금융을 단순히 사회공헌 활동의 언어로 다루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고령층은 소비자다. 노후 자산을 관리하고, 연금을 수령하고, 의료비를 결제한다. 이들이 금융 시스템에서 이탈하면 자산 관리의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을 사금융과 보이스피싱이 채운다. 금융 접근성은 복지의 문제이기 이전에, 금융 생태계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금융연구원 등 관련 기관들은 은행 공동 점포 모델, 우정사업본부와의 연계, 고령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금융기관 의무화 등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기술이 누구를 위해 설계되느냐가 문제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김 씨가 은행 창구 앞에 앉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분이다. 그 40분은 시스템이 그에게 부과한 비용이다.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를 정하는 일이, 지금 이 나라 금융 정책의 숨겨진 의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