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 옆에 트랙터 한 대가 섰다. 운전석에 앉은 건 예순을 훌쩍 넘긴 여성이다. 처음엔 손이 떨렸다. 페달 감각을 익히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 없이도 3,000평 논을 혼자 간다. 「기계를 알고 나니 농사가 달라 보였어요」라는 말이 남 얘기가 아니다. 전국 농촌 곳곳에서 비슷한 장면이 조용히 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2025년 9월 10일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전국 8개 도에서 추천받은 여성농업인 60명, 총 20개 팀이 참가한 '2025 여성농업인 농기계 경연대회'를 열었다. 트랙터 운전부터 이앙기 조작까지, 실전 농기계 숙련도를 겨루는 자리였다. 단순한 기능 경진이 아니었다. 여성이 농기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공식화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왜 지금 여성이 농기계를 잡아야 하나
한국 농촌의 고령화는 수치로 보면 실감이 더 크다. 농가 경영주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이고, 농업 노동력의 중심은 이미 60~70대로 이동했다. 그 빈자리를 묵묵히 채워온 건 여성농업인이다. 농사일의 상당 부분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면서도, 대형 농기계 조작은 오랫동안 '남성의 영역'으로 암묵적으로 분류돼 왔다.
문제는 그 구분이 지금의 농촌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령 남성 농업인이 신체적 한계에 부딪히거나 건강 문제로 이탈하면, 농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경작 자체가 멈추는 농가가 늘고 있다. 경지가 묵히거나, 이웃에 작업을 맡기느라 수익이 쪼그라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여성농업인의 농기계 역량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기계와 여성 사이, 좁혀지지 않던 거리
장벽은 문화적인 것이었다. 농기계 교육 과정은 오랫동안 남성 중심으로 설계됐다. 체형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시트 구조, 근력을 전제한 조작 방식, 교육장의 남성 중심 분위기. 여성이 배우러 가도 불편하거나 겉돌기 쉬운 환경이었다. 농기계 사고 통계를 보면 여성 피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접근하기 어려우니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고, 배우지 못하니 위험에 더 노출되는 구조다.
농촌진흥청의 경연대회는 그 구조를 흔드는 시도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기계를 조작하는 것을 넘어, 안전 점검·유지 관리·현장 응용 능력까지 평가받는다. 교육과 실전, 경쟁이 결합된 방식은 여성농업인 스스로 숙련도를 쌓아갈 동기를 만들어 준다. 60명이 무대에 섰지만, 그 뒤에는 교육 과정에 참여한 수백 명의 여성 농업인이 있다.
숙련이 쌓이면 농업 구조가 달라진다
농기계 운용 능력은 단지 '일손 하나 더 느는' 문제가 아니다. 작업 시기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외부 인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며, 경영 의사결정 자체에 여성의 목소리가 커진다. 실제로 농기계를 직접 다루게 된 여성농업인들이 영농 계획이나 품목 선택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현장 관찰이 이어지고 있다. 기계를 아는 사람이 농장을 주도하게 되는 것은 어느 산업이나 같다.
고령화로 줄어드는 농업 생산력을 보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외부 노동력을 수입하거나, 기존 인력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 후자의 핵심에 여성농업인이 있다. 이미 농촌에 있고, 땅을 알고, 작물을 알고, 이제 기계까지 익히는 사람들. 정책이 이 방향을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실질적으로 지원하느냐가 향후 한국 농업 생산성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트랙터 운전석은 여전히 낯선 공간이다. 하지만 낯섦은 시간이 해결한다. 손에 익은 핸들이 결국 논을 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