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없는 교실을 상상해 보라. 아이들은 태블릿 화면을 두드리고, AI는 각자의 수준에 맞춰 문제를 내준다. 교사는 칠판 대신 대시보드를 들여다본다. 겉으로 보면 더없이 미래적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에서 자꾸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감각을 지우지 못한다.

2025년 신학기, AI 디지털 교과서가 일부 학교에 공식 도입됐다. 그러나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수학·영어 등 일부 과목에만 우선 적용되고, 사회·과학은 1년 뒤로 밀렸다. 준비 부족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더 눈에 띄는 건 지역별 채택률의 극단적 편차다. 대구는 98%에 육박하는 반면, 세종은 8%에 머물렀다. 같은 나라, 같은 학년, 같은 교육과정인데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교실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이것이 디지털 격차의 민낯이다.

디지털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쪽의 논리는 분명하다. 개인 맞춤형 학습, 즉각적인 피드백, 교사 행정 부담 경감. 반론하기 어려운 장점들이다. AI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오답 패턴을 분석해 다음 문제를 조정한다는 건, 수십 명을 동시에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물리적으로 해내기 힘든 일이다. 그 가능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건 성급하다.

하지만 나는 「편리함」이라는 단어가 교육에 무비판적으로 들어올 때 늘 불안해진다. 읽는다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불편하다. 모르는 단어를 만나 멈추고, 문맥을 짐작하고, 틀리면 다시 읽는 그 마찰의 과정이 문해력을 만든다. AI가 모르는 단어를 즉시 설명해 주고, 긴 지문을 요약해 주고, 답을 향해 최적 경로를 안내한다면, 아이들은 그 마찰을 경험할 기회 자체를 잃는다. 마찰 없이 미끄러지는 것은 학습이 아니라 소비에 가깝다.

실제로 해외 연구들은 디지털 기기 기반 읽기가 종이 기반 읽기보다 깊은 이해와 기억 유지에서 낮은 성과를 보인다는 결과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스웨덴은 2023년 디지털 교육을 전면 확대하려다 오히려 교과서와 손글씨 교육으로 방향을 틀었다. 앞서 달려간 나라가 되돌아온 길을 우리는 지금 막 출발하고 있다.

대구 98%, 세종 8%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이 격차가 고착되면 디지털 교과서를 일찍 접한 지역의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아이들 사이에 경험의 불균형이 쌓인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조차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에 따라 교육 실험의 피험자가 달라지는 구조는 형평의 문제를 넘어 윤리의 문제다.

기술은 도구다. 망치를 쥐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못으로 볼 필요는 없다. 교육학자 닐 포스트먼은 일찍이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무언가를 주고 무언가를 빼앗아 간다」고 했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무엇을 주는지는 정부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무엇을 빼앗아 가는지를, 우리는 충분히 따져 묻지 않았다.

사회·과학 과목의 도입을 1년 늦춘 건 솔직히 다행이다. 그 1년이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라, 진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화면을 통해 무언가를 빠르게 찾는 법을 배우는 동안, 천천히 읽고 스스로 생각을 쌓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속도를 높이기 전에,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먼저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