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의 60세 베테랑 엔지니어가 퇴직 통보를 받던 날, 그의 자리를 채운 것은 신입사원이 아니었다. 자리 자체가 없어졌다. 비용 절감을 명목으로 업무가 외주로 쪼개졌고, 청년도 시니어도 아닌 플랫폼 노동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정년 연장 논쟁이 세대 간 의자 빼앗기처럼 묘사될 때마다, 나는 이 장면을 떠올린다. 애초에 의자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 그것이 본질 아닌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들이 2025년 5월 내놓은 제언은 도발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법정 정년 60세는 그대로 두되, 2033년까지 65세 계속고용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청년 일자리 보호 방안을 병행하자는 구상이다. 단칼에 정년을 올리는 대신, 기업이 재고용·재배치·전환 배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숙련 노동자를 붙잡을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다. 충격을 완화하면서 방향을 잡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배경은 냉혹한 숫자로 설명된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 문턱을 넘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향해 치닫는 사회에서, 60세 정년이라는 틀은 수명 연장 현실과 점점 어긋난다.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점진적으로 65세로 늦춰지고 있다. 정년과 연금 사이의 공백, 그 5년은 수많은 중장년이 아무런 소득 없이 버텨야 하는 벼랑이다. 정년 연장 논의는 그 벼랑 앞에서 피할 수 없이 제기된다.
그런데 청년 세대의 불안도 외면할 수 없다. 연공서열 중심의 호봉제가 지배하는 노동시장에서 고령 근로자가 자리를 오래 지킬수록,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드는 구조는 실재한다. 이 우려를 단순히 세대 이기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청년들의 공포는 감정이 아니라 수치로 증명된다. 청년 고용률이 제자리를 맴도는 동안, 50·60대 취업자 수는 꾸준히 늘었다. 같은 파이를 나눠 먹는 제로섬 게임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구도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 파이가 고정돼 있다는 전제 말이다. 직무급제로의 전환이 선행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이가 아니라 맡은 직무의 가치와 숙련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에서는, 고령 근로자가 곧 높은 인건비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은 굳이 숙련자를 내보낼 유인이 줄고, 청년은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 경로를 얻는다. 두 세대가 같은 의자를 두고 싸울 이유가 사라진다. 일본이 65세 이상 계속 고용을 의무화하면서 직무 재설계와 임금 체계 개편을 동시에 추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직무급제 전환은 쉽지 않다. 노동조합은 기득권 침해를 우려하고, 기업은 평가 체계 정비 비용을 부담스러워한다. 수십 년간 쌓인 연공서열의 관성은 하루아침에 걷어낼 수 없다. 그 어려움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렵다는 이유로 체질 개선 없이 정년만 늘린다면, 그것은 노동시장의 오래된 불균형에 균열 하나 더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세대 간 신뢰는 그 균열 속에서 조용히 무너진다.
경사노위가 제시한 로드맵이 답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방향은 맞다. 정년이라는 선을 어디에 긋느냐보다, 그 선 안팎을 어떤 규칙으로 채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 세대 갈등처럼 포장된 이 문제의 본질은 결국 노동시장의 설계 문제다.
강은 물이 불어도 둑을 쌓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물길을 새로 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