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에는 서점이 없다. 청송도, 울릉도도 마찬가지다. 전북 임실과 순창, 경남 의령도 그렇다. 2024년 지역서점 실태조사 결과가 확인한 현실이다. '서점 소멸 지역' 여섯 곳. 그 주민들은 책 한 권을 사려면 읍내 버스를 타고 이웃 군으로 나가야 한다. 혹은 스마트폰을 열어야 한다. 손가락 두 번 탭으로 다음 날 책이 도착하는 세상에 서점이 왜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다. 그 질문이 정당해 보일수록,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의 정체가 더욱 선명해진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202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전국 서점은 2,484곳이다. 1년 전보다 44곳이 문을 닫았다. 숫자로는 작아 보인다. 그러나 폐업한 서점 하나하나에는 단골 할아버지가 있었고, 방과 후 들렀던 중학생이 있었고, 매주 토요일 독서 모임을 열던 서른 명의 이웃이 있었다. 가게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다. 모이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동네 책방은 오랫동안 한국 지역 사회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1980년대 대학가 서점들이 토론과 사상의 광장이었다면, 지금의 독립서점은 더 작고 더 밀착된 방식으로 공동체를 엮어왔다. 북토크, 작가와의 만남, 그림책 읽어주기, 지역 작가 자비출판 전시. 한 평짜리 공간이 수행하던 역할은 그 어떤 대형 문화 시설보다 생활에 가까웠다.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에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무의미라고 썼다. 공동체가 모일 이유를 잃은 골목은, 그 무의미를 매일 겪는다.

물론 냉정한 반론도 있다. 시장은 수요를 따른다. 독자들이 온라인으로 떠났다면 오프라인 서점은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것이고, 그것이 자본주의 원리라는 주장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효율의 언어로만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효율이 지배하는 곳에서 문화는 자라지 않는다. 도서관이 적자여도 짓는 이유, 공원이 수익을 내지 않아도 가꾸는 이유와 같다. 지역의 서점은 인프라다. 수익 구조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 공공재로 다뤄야 할 공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언이 아니라 설계가 필요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독립서점에 임대료 보조나 문화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이미 시도하고 있다. 효과가 없지 않다. 그러나 산발적인 지원은 서점 하나를 살릴 수는 있어도 생태계를 바꾸지는 못한다. 서점을 지역 문화 거점으로 공식 지정하고, 학교·도서관·복지관과 연계하는 구조적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읍면 단위에서 서점이 사라지지 않도록 '최소 서점 보장' 개념을 공론화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서점 업계와 출판문화 단체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독자들의 역할도 크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책만 읽는 사람은 알고리즘이 설계한 세계 안에서만 산다. 서점은 계획하지 않았던 책과 우연히 눈이 마주치는 곳이다. 그 우연이 삶을 바꾼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공간에 기꺼이 발길을 돌려야 한다. 소비 행위가 곧 지지 행위가 되는 몇 안 되는 영역이 여기에 있다.

서점이 없는 마을은 책이 없는 마을이 아니다. 모일 이유가 없는 마을이다. 그리고 모이지 않는 공동체는, 천천히 혼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