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감독 A씨는 드라마 한 편을 끝내고 나면 허리가 먼저 무너진다고 했다. 새벽 두 시에 세팅하고, 다음 날 오전 여섯 시에 다시 현장에 선다. 쉬는 날이 없다는 게 아니라, 쉬는 날의 개념 자체가 없다. 그의 일당은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시간, 같은 세트장 끄트머리 캐러밴 안에서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주연 배우의 회당 출연료는 억 단위를 훌쩍 넘는다. 일부 정상급 배우의 경우 시즌 계약 총액이 수십억 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이야기다. 같은 드라마, 같은 밤, 같은 세트. 그러나 두 사람이 경험하는 현실은 평행우주처럼 따로 존재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방송산업백서'는 하나의 숫자를 냉정하게 제시한다. 국내 드라마 평균 제작비는 2018년 회당 10억 원에서 2023년 30억 원으로, 불과 5년 만에 세 배 뛰었다. 제작 환경이 세 배 좋아졌는지는 현장에 물어보면 안다. 장비는 여전히 노후하고, 계약서 없이 일하는 스태프도 드물지 않으며, 식사 시간은 촬영 진행 상황에 따라 증발한다.

물론 스타 시스템이 갖는 논리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OTT 플랫폼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콘텐츠의 첫인상, 즉 캐스팅이 곧 마케팅이 된 구조는 엄연한 현실이다. 특정 배우의 이름 하나가 글로벌 구독자 수십만 명을 움직인다면, 그에 상응하는 가격이 형성되는 것은 시장의 언어로는 틀리지 않다.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처럼 스타에게 베팅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의 논리가 정당하다고 해서, 그 비용을 누가 치르는지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제작비 파이가 커졌어도 그 증가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출연료와 마케팅비가 팽창하는 동안, 스태프의 일당 구조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일관된 증언이다. 화려한 성찬이 차려진 식탁에서, 요리사는 남은 것을 먹는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은 계약서에 적힌 살 한 파운드를 요구한다. 법적으로 틀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정의는 아니었다. 스타 출연료 계약도 마찬가지다. 협상력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시장에서 유효하다고 해도, 그 계약의 이면에서 누군가의 안전과 생계가 담보로 잡혀 있다면, 그 구조는 점검받아야 한다.

변화의 신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표준 근로계약서 확산 움직임, 촬영 현장 안전 규정 강화 논의, 일부 제작사의 자체적인 처우 개선 시도들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현장을 따라가는 속도는 언제나 느리고, 그사이에도 오늘 밤 누군가는 새벽 세트장에서 조명 케이블을 끌고 있다.

스크린 위에서 빛나는 얼굴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다루는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