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어느 폐교 건물에 불이 켜졌다. 귀농도 아니고 귀촌도 아니다. 스물여덟의 청년이 거기서 로스터리 카페를 열었다. 동네 할머니들이 처음엔 멀뚱히 쳐다봤고, 이제는 손자 손녀를 데려온다. 이 장면 하나가 수십 쪽짜리 지방 소멸 보고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지방이 비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숫자로도 충분히 잔인하다.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기초지자체가 전국 절반을 넘어섰고, 일부 군 지역은 학교보다 요양원이 많다. 정부는 수조 원을 쏟아부었다. 도로를 뚫고, 청사를 지었다. 그러나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인프라는 사람을 부르지 못한다. 이야기가 사람을 부른다.

그 이야기를 만드는 주체가 바뀌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21년 운영한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 결과를 보면, 참여자 가운데 청년 비중이 56%에 달했다. 같은 해 일반 창업지원사업 평균인 49.2%를 훌쩍 넘는 수치다. 여성 비중 역시 49.6%로, 로컬 창업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지역의 자원 — 묵은 된장, 폐광의 기억, 갯벌의 냄새 — 을 서울 감각으로 재편집해 브랜드로 만든다. 지역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지역과 함께 산다.

물론 낭만으로 덮어선 안 된다. 로컬 창업은 외롭고 고되다. 배송 인프라가 약하고, 투자자는 서울을 선호하며, 지역 행정의 속도는 시장보다 느리다. 한두 명의 청년이 마을을 살린다는 서사는 자칫 국가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타당하다. 정책 없는 감동 스토리는 결국 소진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 반론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방향 자체가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도시 집중의 논리는 '효율'이다. 로컬 브랜딩의 논리는 '고유성'이다. 이 둘은 제로섬이 아니다. 도시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때, 지역은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팔 수 있다.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만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지방이 가진 마지막 경쟁력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 홀로 앉아 썼다. 「나는 삶의 정수만을 빨아들이고 싶었다.」 지금 지방 곳곳에 뿌리를 내린 청년들도 비슷한 문장을 살고 있다. 그들은 서울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만들기를 택한 것이다. 지역 브랜딩은 귀거래사(歸去來辭)가 아니라 새로운 출사표(出師表)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이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것, 그리고 이들이 소진되기 전에 버틸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임대료 지원, 물류 인프라, 판로 연결. 거창한 청사진이 아니라 작은 실질이다. 로컬크리에이터 한 명이 한 마을의 이야기를 바꿀 때, 정부는 그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서 있으면 된다.

텅 빈 마을회관보다 불 켜진 폐교가 낫다. 지방을 살리는 것은 거대한 계획이 아니라, 거기 남기로 결심한 한 사람의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