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제기동 경동시장 골목, 한약재 냄새가 가득하던 그 자리에 어느 날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단순한 커피 매장 입점이 아니었다. 1960년대 지어진 건물 외벽을 그대로 살린 '경동1960점'은 개점 직후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수십 년 묵은 시장 골목에 긴 줄을 만들어냈다. 더 주목할 점은 이 프로젝트가 동반성장위원회와의 협력 아래 음료 한 잔이 팔릴 때마다 일부 수익이 시장 상인들에게 환원되는 구조로 설계됐다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이 낡은 시장의 생태계를 건드린 셈이다.
전통시장의 쇠락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형마트, 편의점, 새벽 배송 앱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시장 골목은 손님보다 그늘이 더 깊어졌다. 그러나 그 그늘 안에서 조용히 다른 흐름이 생겨났다. 이십 대 청년들이 빈 점포를 열고, 낡은 간판을 다시 디자인하고, 동네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기 시작했다. 로컬 브랜딩이라는 언어가 전통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로컬 브랜딩은 단순히 예쁜 간판을 다는 일이 아니다. 장소가 품고 있는 기억과 냄새, 오래된 상인의 손등과 골목의 기울기 같은 것들을 이야기로 증류해 내는 작업이다. 경동시장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전주 남부시장의 청년몰, 부산 부평깡통시장의 야시장 브랜딩, 대구 서문시장의 야시장 재생 프로젝트 등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오래됐으니 정겹다'는 노스탤지어 마케팅을 넘어서, 그 시장만이 가진 고유성을 발굴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편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청년 상인이 들어오면 임대료가 오르고, 정작 수십 년을 버텨온 원주민 상인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늘이 드리울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일부 성공한 시장 핫플레이스에서 그런 갈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 지적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 우려가 로컬 브랜딩 자체의 실패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설계의 문제다. 경동1960 사례처럼, 수익 환원 구조와 협치 모델이 함께 작동할 때 브랜딩은 시장을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다시 숨 쉬게 한다.
청년 상인들의 역할은 생각보다 정교하다. 그들은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로 시장 전체의 이미지를 바꾼다. 오래된 떡집 할머니의 손맛을 쇼츠 영상으로 기록하고, 시장 지도를 직접 디자인해 관광객의 손에 쥐어준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감각과 로컬 히스토리가 교차한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청년 상인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전통시장이 단순한 지역 소비 공간을 넘어, K-로컬 브랜드의 발신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정책이 감지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시장은 원래 광장이었다. 물건만 팔리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가 교환되는 곳. 그 본질을 로컬 브랜딩은 되살리려 한다. 어쩌면 전통시장의 부활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잊혔던 광장의 문법을 새 세대의 언어로 다시 쓰는 일인지 모른다.
낡은 것은 낡아서 소멸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잃어서 소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