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지방의 한 시청 과장 A씨는 늘 같은 고민을 했다. 오랜 업무 관계를 맺어온 거래처에서 보내온 과일 상자 하나. 2만 1,000원짜리 사과 상자와 2만 원짜리 배 상자였다. 받아도 되는 걸까, 돌려보내야 하는 걸까. 그는 받았다. 골프 접대도 함께였다. 그리고 법정에 섰다.
2023년 10월, 법원은 A씨가 제기한 견책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선물의 금액이 아니라 '직무 관련성'이 핵심이었다. 해당 업자가 A씨의 직무와 관련된 거래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되면서, 4만 원 남짓한 과일 상자는 청탁금지법상 위반의 증거가 됐다. 공직사회는 이 판결에 조용히 술렁였다.
「직무 관련성」이라는 칼날
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된 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선물의 상한을 5만 원으로 규정한다. 단, 이는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에 한한다. 직무 관련자로부터는 금액에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선물을 받을 수 없다. A씨 사건이 보여주듯, '1만 원짜리 소정의 선물'이라도 상대가 직무 관련자라면 법의 경계를 넘는다.
문제는 '직무 관련성'의 경계가 현장에서는 생각보다 흐릿하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오래 근무한 한 공무원은 「같은 부서에서 10년을 보내면 지역 업체 대표들과 얼굴을 모르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지역 사회의 특성상 개인적 친분과 업무적 관계가 뒤섞이는 경우가 잦다. 거기에 명절 관습이 더해지면, 선물의 성격을 가르는 선이 더욱 애매해진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해마다 명절 전후 집중 점검을 실시하고, 공직자 행동강령에 따른 신고 의무도 강화해왔다. 직무 관련자로부터 선물을 받았을 경우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고 반환하도록 하는 절차가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신고 제도가 실제로 얼마나 작동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신고 건수 자체가 제도의 실효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신고는 늘었지만, 관행은 여전히 그 자리에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2016년 이후 공직사회의 접대·선물 문화는 분명히 달라졌다. 명절마다 부서로 쏟아지던 선물 꾸러미가 눈에 띄게 줄었고, 기업들도 공직자 접대를 공개적으로 꺼리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법이 행태를 바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도 함께 자랐다. 업계 일각에서는 선물 대신 '편의 제공'의 형태가 다양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품 대신 정보, 금품 대신 인맥. 형식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유사한 거래가 음성화된다는 우려다. A씨 사건에서 골프 접대가 함께 불거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금이나 물품이 아닌 '경험'과 '향응'은 추적이 더 어렵다.
선물 신고 제도의 실효성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자진 신고를 통한 적발보다 제3자 신고나 감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례가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신고하지 않았을 때 이를 걸러내는 독립적인 검증 체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판결 이후, 달라지는 것과 달라지지 않는 것
A씨 판결은 공직사회에 하나의 기준점을 새겼다. '금액이 적으면 괜찮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법정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 직무 관련성이 있다면, 명절 관행은 법적 방어막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현장의 변화는 더디다. 수십 년간 쌓인 관행은 판결 하나로 단번에 걷히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공직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선물을 받는 게 아니라 받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더 복잡한 사회적 코드가 됐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제도가 행태를 선도하려면 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신고 후 반환 절차의 간소화, 직무 관련성 판단 기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공, 그리고 자진 신고자에 대한 실질적 보호가 맞물려야 한다. 사과 한 상자의 무게를 스스로 재게 하는 것이 법의 목표라면, 공직자가 그 저울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