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요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독립서점 안. 열두 명이 접이식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소설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무릎과 무릎이 닿을 만큼 좁았지만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밀도가 이 공간의 가격이었다. 알고리즘이 큐레이션해주는 추천 목록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온기였다.
전국 독립서점 업계는 매년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작가'를 선정한다. 2025년, 그 자리에 한강 소설가가 올랐다. 2024년 말 노벨문학상 수상이 단순히 한 작가의 영예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독립서점 관계자들은 이 사건이 오프라인 서점 전체에 「압도적인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문학이 거리로 걸어 나온 순간, 사람들이 화면을 닫고 책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렇다고 낙관론에 취해서는 안 된다. 한 권의 노벨상 특수가 구조적 위기를 덮을 수는 없다. 대형 온라인 플랫폼은 정가의 10~15%를 할인하고, 로켓배송으로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책을 던져놓는다. 공간 임대료는 오르고, 독자의 주의력은 쪼개진다. 독립서점이 가격으로 싸우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게임이다.
그래서 살아남은 서점들은 아예 다른 게임을 선택했다.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곳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한 것이다. 북토크, 독서 모임, 글쓰기 워크숍, 지역 작가 전시—이 모든 것이 한 평짜리 카운터 뒤에서 기획된다. 책방 주인은 서점 주인이기 전에 편집자이자 큐레이터이자 동네 문화 기획자다. 손님이 아니라 단골 독자를, 단골 독자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을 만드는 일. 그것이 이들의 생존 방식이다.
물론 이 전략이 모든 독립서점에 통하지는 않는다. 커뮤니티 이벤트를 기획할 여력이 없는 1인 서점, 집객이 어려운 지방 소도시의 책방에는 이 모델이 그림의 떡일 수 있다. 고령화된 지역에서 북토크 청중을 모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존의 방정식이 수도권과 지방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낙관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실험들이 단순한 상업적 생존 시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독립서점은 지금 우리 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무언가를 대신 붙들고 있다. 속도와 편의가 지배하는 시대에 「느린 발견」의 가치를 지키는 것, 알고리즘이 아닌 사람이 책을 권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 이것은 문화적 생태계의 문제이지, 단지 소매업의 문제가 아니다. 대형 플랫폼이 독자의 취향 데이터를 수집할 때, 독립서점은 독자의 이름을 기억한다. 두 모델이 만들어내는 독서 문화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방자치단체 중 일부는 독립서점을 지역 문화 인프라로 인식하고 지원 정책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관 주도 지원이 자칫 서점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역설도 경계해야 한다. 보조금이 끊겼을 때 혼자 서 있을 수 있는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 진짜 지원이다.
책방은 원래 동네의 신경절이었다. 소문이 모이고, 생각이 교환되고, 낯선 이름의 작가가 이웃이 되던 곳. 그 역할이 플랫폼에 넘어간 지 오래라고들 말하지만, 목요일 저녁 열두 명의 무릎이 맞닿던 그 서점은 아직 건재하다. 책 한 권의 무게로 동네를 붙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