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의 대일본 여행수지 적자가 57억 54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이 2026년 6월 23일 발표한 수치다. 엔화 가치 하락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일본 여행 비용 부담이 크게 줄었고, 그 결과는 숫자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엔저, 얼마나 깊어졌나

엔·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160엔 선을 돌파하며 수십 년 만의 약세 구간에 진입했다. 원·엔 환율 기준으로 보면 100엔당 900원 안팎까지 떨어진 시기도 있었다. 2010년대 초반 100엔당 1,400원대와 비교하면 일본 현지에서의 체감 물가는 30% 이상 낮아진 셈이다. 숙박·식사·쇼핑 모두 '예전보다 싸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일본 여행 수요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한국인 일본 방문객, 구조적 쏠림으로

일본정부관광국(JNTO)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수년째 일본 최대 방문 국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단순한 여행 붐이 아니다. 항공 노선 증편, 저비용항공사(LCC) 좌석 확대, 오사카·후쿠오카 등 지방 공항 직항 개설이 맞물리면서 일본 여행의 진입 장벽 자체가 낮아졌다. 엔저가 촉매제 역할을 했지만, 인프라 측면의 변화가 이 흐름을 구조적으로 고착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행수지 적자의 의미

여행수지 적자는 내국인이 해외에서 쓴 돈이 외국인이 국내에서 쓴 돈보다 많다는 뜻이다. 대일 적자만 57억 달러를 넘었다는 것은, 그 돈이 국내 숙박업·요식업·유통업이 아닌 일본 현지 경제로 흘러들어 갔음을 의미한다. 국내 관광 업계, 특히 내수 의존도가 높은 지방 관광지와 중소 숙박시설에는 수요 이탈 압력으로 작용한다.

국내 관광업계의 역풍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 주요 관광지는 내국인 방문객 감소세를 체감하고 있다. 항공권 가격 경쟁에서도 일본 노선이 국내선을 잠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같은 예산으로 제주 대신 오사카를 택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국내 관광 수요의 '일본 대체' 현상이 가시화됐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엔저 언제까지

일본은행(BOJ)이 금리 인상 기조로 점진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나, 엔화 가치의 의미 있는 반등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일 금리 격차가 좁혀지는 속도가 완만한 데다, 일본 정부도 급격한 엔화 강세를 원하지 않는다는 관측이 있다. 엔저가 단기에 해소되지 않는 한, 한국의 대일 여행수지 적자 구조는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57억 달러.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한국 소비자의 지갑이 어디를 향하는지, 그리고 국내 관광 산업이 그 흐름을 되돌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묻는 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