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조 원. 국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이 수준에 육박한다. 코로나19 이후 생존을 위해 빌린 돈이 누적된 결과다.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질(質)이다. 이 중 상당 부분이 복수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에게 집중돼 있고,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침체가 맞물리면서 상환 능력이 임계점을 향해 빠르게 수렴하고 있다.
누가 가장 위험한가 — 다중채무자의 구조적 취약성
자영업자 대출 부실 문제는 전체 규모보다 그 내부 구조를 들여다볼 때 윤곽이 선명해진다.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는 한 곳의 상환 압박만으로도 연쇄 부실이 촉발될 수 있다. 은행권 대출이 막히면 저축은행·카드사·대부업으로 이동하는 '대출 사다리 타기'가 반복되면서, 실질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미 90일 이상 연체 상태에 놓인 부실차주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는, 이 사다리의 마지막 발판마저 부러졌음을 뜻한다.
업종별로는 음식업·소매업·숙박업 등 대면 소비에 의존하는 분야의 차주 부실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팬데믹 시기 매출 절벽을 대출로 버텼지만, 이후 회복 속도가 이자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연간 이자 부담이 수백만 원씩 추가된다. 폐업해도 빚은 남는다.
새출발기금, 설계는 맞다 — 실행이 문제다
정부는 새출발기금을 통해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차주에게는 순부채의 최대 80%, 취약계층에게는 최대 90%까지 원금을 감면해주는 구조다. 연체 기간이 짧은 부실우려차주에게는 만기 연장·금리 인하 등 조건 완화를 지원한다. 설계 방향 자체는 타당하다. 부실이 확정되기 전에 개입해 손실을 줄이는 '선제적 채무조정'이야말로 금융 시스템 전체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접근성과 심사 속도가 병목으로 지목된다. 복잡한 서류 요건, 긴 심사 기간, 금융 정보 접근이 어려운 취약 차주의 낮은 신청률이 실제 지원 실적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제도가 있어도 가장 위험한 사람이 가장 늦게 닿는다면, 그 제도는 절반의 역할만 하는 셈이다.
연착륙의 조건 — 속도, 촘촘함, 그 이후
자영업 대출 부실이 임계를 넘으면 그 충격은 자영업자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중소형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서민 신용 공급 위축으로 파급된다. 1100조 원이라는 숫자가 단순한 가계부채 통계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 리스크의 신호로 읽혀야 하는 이유다.
효과적인 연착륙을 위해서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첫째, 다중채무자를 조기에 식별하는 정보 시스템의 고도화. 연체가 시작되기 전 신호를 포착해 선제 상담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채무조정 이후 재기를 뒷받침하는 사업 재편 지원. 빚을 줄여줬더라도 수익 모델이 작동하지 않으면 재부실은 시간문제다. 셋째, 폐업을 선택한 자영업자가 임금 근로자로 전환할 수 있는 재취업 경로의 실질적 확대다.
채무조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1100조 원의 경보음이 울리는 지금, 관건은 누가 얼마나 빠르게 그 문을 두드리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