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었다. 같은 기간 발의된 법안은 1만 8,473건. 그런데 본회의 문턱을 넘은 법안은 그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상임위 서랍 속에 잠들어 있거나, 정쟁의 파고에 휩쓸려 표류 중이다. 숫자가 말해주는 건 단순하다. 국회가 입법 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본지는 이 현실을 깊이 우려한다. 협치가 실종된 국회는 민생을 담보로 정치를 소비하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첫째, 민생 법안이 정쟁의 부산물로 폐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소상공인 지원, 의료 공백 해소, 돌봄 체계 정비 등 시급한 생활 밀착형 법안들이 여야 대치 속에 처리 시한을 넘기는 일이 되풀이된다. 법안 하나가 통과되지 못할 때마다 누군가의 치료가 늦어지고, 어딘가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심각하다'는 말보다 이 장면이 더 솔직한 진단이다.

둘째, 거부권 정국이 입법 교착을 구조화하고 있다. 행정부의 법안 재의요구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한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될 때, 국회는 통과시키고 행정부는 되돌리는 무한루프가 형성된다. 입법권과 행정권이 서로를 향한 거부의 도구로만 쓰일 때, 그 사이에 끼인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람이다. 국민은 입법부와 행정부가 경쟁하는 구경꾼이 아니다.

셋째, 신뢰의 소진이 민주주의의 비용을 높인다. 협치 실패가 반복되면 국민은 정치 제도 자체에 대한 기대를 거둔다. 투표율 하락, 정치 무관심, 극단적 진영화는 모두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경제가 흔들리고 환율이 요동치는 시기일수록, 정치의 안정성은 사회 전체의 면역력이 된다. 그 면역력이 지금 이 순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물론 여야 모두 협치의 의지를 표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선언과 실천 사이의 간극이다. 협치는 의제 설정 단계부터 함께 앉는 것을 의미한다. 쟁점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여야 간 사전 협의 채널이 작동해야 하고, 상임위원회는 정치적 무대가 아닌 입법의 작업장이 되어야 한다.

타협은 굴복이 아니다. 상대의 논리에서 타당한 부분을 수용하고, 자신의 요구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이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지금 국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법안 발의가 아니라, 더 많은 법안 통과다. 그리고 그 통과는 협상 테이블에서만 가능하다.

18,473건의 법안 중 얼마나 많은 삶이 담겨 있을지 생각해보라. 국회가 다시 그 삶들을 향해 문을 열기를, 본지는 단호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