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첫 폭우가 쏟아진 날 밤, 반지하 창문 바깥으로 빗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지면보다 낮은 구조 탓에 배수가 막히면 물은 빠져나갈 곳을 잃고 현관 틈으로 밀려든다. 2022년 서울 신림동과 동작구 반지하에서 세 가족이 목숨을 잃은 뒤 3년이 흘렀다. 그 여름이 매년 돌아온다.

현황: 77%의 완성, 23%의 공백

서울시에 따르면 2026년 6월 기준 침수 위험 반지하 주택 중 물막이판 설치가 필요한 23,094가구 가운데 17,837가구, 즉 77.2%에 설치가 완료됐다. 수치만 보면 상당한 진전이다. 그러나 역산하면 여전히 5,257가구가 이번 여름을 물막이판 없이 맞는다. 서울에서만이다.

물막이판은 현관문 하단에 끼워 넣는 방수 차단막으로, 단시간 집중호우 때 실내로 유입되는 물을 일차적으로 막아주는 구조물이다. 설치 비용은 가구당 수십만 원 수준이지만, 임대 가구의 경우 건물주 동의가 필요하고, 노후 건물은 문틀 규격이 맞지 않아 설치 자체가 어렵다는 현장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완료율이 100%에 닿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다.

물막이판 너머의 문제들

물막이판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시간당 강수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판 자체가 수압을 버티지 못한다. 2022년 침수 사고 당시 강수량은 시간당 100mm를 웃돌았다. 기후 관측 통계를 보면 서울의 시간당 80mm 이상 극한 강수 발생 빈도는 10년 전보다 증가 추세다. 물막이판이 설계된 방어선보다 강수 강도가 이미 앞서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거주 가구 자체의 특성이다. 반지하 거주자는 고령자, 1인 가구, 저소득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새벽에 폭우가 시작돼 대피 경보가 울려도 혼자 사는 노인이 짐을 챙겨 즉시 대피하기란 쉽지 않다. 재난 문자가 스마트폰에 뜨는 순간에도 거동이 불편하거나 잠든 상태라면 골든타임을 놓친다. 하드웨어 설치와 별개로, 인적 안전망이 함께 작동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침수 취약 가구에 대한 사전 방문·연락 체계를 운영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담당 인력이 수천 가구를 관리하는 구조에서 장마철 실시간 대응이 얼마나 촘촘하게 작동하는지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전문가 사이에서 나온다.

이주 대책과 현실의 거리

정부와 서울시는 2022년 사고 직후 반지하 신규 건축을 단계적으로 제한하고, 기존 반지하 가구의 공공임대 이주를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장기적으로 반지하 주거 자체를 줄이겠다는 방향이다. 그러나 이주 지원 물량은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의 반지하 가구는 수십만 호 규모로 추산되는데, 공공임대 공급 속도는 그 수요를 흡수하기에 역부족이다.

이주를 원해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학교·병원 등 생활 기반이 현 거주지와 묶여 있는 가구에게 먼 지역의 임대아파트는 현실적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안전을 선택하는 것이 생계와 생활권을 포기하는 것과 연결될 때, 사람들은 익숙한 위험 앞에 머문다.

결국 반지하 안전 문제는 물막이판 몇 장으로 해결되는 공학적 과제가 아니라, 주거 빈곤과 도시 불평등이 응축된 구조적 문제다. 장마는 매년 정확히 돌아오는데, 그 앞에 놓인 5,000여 가구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