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부터 5월 26일까지 꼭 한 달. 서울 지하철 열차 안에서 승객 소지 보조배터리에 연기가 난 사고가 4건 발생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집계한 수치다. 열흘에 한 번꼴로 밀폐된 객차 안에서 연기가 피어오른 셈이다. 불이 붙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리튬이온 배터리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 '다행'이 얼마나 얇은 여백 위에 서 있는지 드러난다.
왜 리튬이온 배터리는 타는가
리튬이온 배터리가 발화하는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배터리 내부의 양극과 음극 사이를 분리하는 '세퍼레이터'가 충격·과충전·고온 등으로 손상되면 두 전극이 직접 맞닿으며 단락(합선)이 발생한다. 이 순간 배터리 내부에 축적된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방출되면서 전해질 용액이 기화·연소한다. 이른바 '열폭주(thermal runaway)'다. 한 번 시작되면 외부에서 억제할 방법이 없다. 소화기를 뿌려도 꺼지지 않고, 물에 담가도 내부 반응은 계속된다. 지하철처럼 밀폐된 공간에서는 그 위험이 배가된다.
문제의 핵심은 '액체 전해질'에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리튬이온 배터리 대부분은 유기용매 계열의 액체 전해질을 사용한다. 이 물질은 상온에서 쉽게 기화하고, 점화 온도가 낮다. 배터리가 팽창하거나 외피가 손상될 때 이 전해질이 외부로 새어 나오면 발화 조건이 순식간에 갖춰진다. 저가 보조배터리일수록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정밀도가 낮고, 셀 품질 편차가 커 위험에 더 취약하다.
전고체 배터리: 구조가 다르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름 그대로 전해질을 고체로 바꾼다. 액체 전해질을 산화물·황화물·폴리머 계열의 고체 소재로 대체하면 열폭주를 유발하는 연소성 물질이 사라진다. 물리적으로 불이 붙을 재료가 없어지는 것이다. 세퍼레이터도 필요 없어지므로 단락 경로 자체가 줄어든다. 에너지 밀도는 리튬이온 대비 이론상 2배 이상 높일 수 있고, 온도 범위도 넓다. 배터리 업계가 전고체를 '꿈의 배터리'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상용화는 아직 험로 위에 있다. 고체 전해질은 이온 전도도가 액체에 비해 낮고, 충방전 과정에서 전극과 전해질 경계면이 박리되는 문제가 반복된다. 대형 셀을 균일하게 제조하는 공정 기술도 미성숙 단계다. 국내외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2027~2030년을 전고체 배터리 양산 목표 시점으로 설정하고 있으나, 완성차 탑재 기준의 전면 상용화는 2030년대 초반 이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술 격차와 한국의 위치
일본 토요타는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2027~2028년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이다. 중국 CATL과 BYD도 각각 반고체 및 전고체 라인업을 공개하며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도 산화물계·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나, 현재까지 양산 일정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기업은 없다.
시장조사기관들은 전고체 배터리 시장이 2030년대 초반부터 본격 성장해 2035년 전후로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소형 전자기기·웨어러블 분야에서는 전고체 배터리 적용이 전기차보다 빠를 수 있다. 보조배터리나 스마트기기용 소형 전고체 셀은 일부 기업이 이미 소량 생산 단계에 진입했다.
지하철 객차 안 연기 사건이 시사하는 것은 단순한 안전 불감증이 아니다. 수십 년간 검증된 리튬이온 기술이 이제 그 한계 구간에 진입했다는 신호다. 사용 기기는 늘고, 배터리 용량은 커지고, 공공장소 밀도는 높아지는데 전해질은 여전히 탄다.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가 늦어지는 매 해, 그 간극을 메워야 하는 것은 BMS 규제와 품질 인증 기준의 강화다. 기술이 도달하기 전까지 제도가 먼저 달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