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멈춰 선 공장이 있다. 이란의 정유·가스 생산 설비 상당수는 1990년대 수준에서 시간이 동결됐다. 국제 제재가 현대화의 문을 막았고, 그 사이 세계는 달라졌다. 이제 그 문이 열릴 수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협상이 종전 국면으로 접어들며, 454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이란 재건 시장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본지는 이 시점에 한국 건설·플랜트·인프라 기업들의 선제적 시장 진입을 강력히 촉구한다.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만 열린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준비를 끝내야 할 때다.
첫째, 이란 재건 수요의 핵심은 플랜트다. 노후화된 정유·가스 생산 설비의 현대화, 석유화학 단지 복구, 전력·수처리 인프라 재건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이 분야는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영역이다. 중동 전역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시공 경험, 공기 준수 능력, 엔지니어링 기술력은 이란이 원하는 조건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한국 플랜트 산업이 이란을 낯선 시장으로 볼 이유가 없다.
둘째, 선례가 있다. 2015년 이란 핵협상 타결 직후 한국 기업들의 이란 수주 계약이 급증했다. 건설·플랜트·자동차·금융 등 복수 분야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 잇따랐다. 그러나 2018년 미국의 제재 재개로 상당수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기업들은 쓴맛을 봤다. 이번에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리스크를 인지하되, 그 리스크를 이유로 뒤로 물러서는 건 전략이 아니라 포기다. 제재 재개 가능성에 대비한 계약 구조 설계, 단계적 수주 전략, 복수 국가 협력 모델 등 구체적 리스크 헤지 방안을 갖추고 뛰어드는 것이 옳다.
셋째, 지금 망설이면 자리가 없다. 중국은 이미 이란과 25년짜리 포괄적 협력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유럽 기업들도 제재 완화 신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튀르키예도 움직인다. 시장은 진공 상태로 기다려주지 않는다. 선점한 기업이 표준을 정하고, 후발 주자는 그 표준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이 2015년 이후 구축했던 현지 네트워크와 프로젝트 경험은 아직 살아 있다. 그것을 지금 당장 소환해야 한다.
정부 역할도 분명하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이란 프로젝트 금융 지원 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고, 외교 채널을 통해 이란 정부와의 공식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 기업 혼자 정치적 리스크를 짊어지게 해선 안 된다. 국가가 뒤를 받쳐줄 때 기업은 앞으로 나간다.
454조 원. 이 숫자는 추정치지만, 방향은 명확하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큰 미개발 재건 시장이 될 것이다. 한국 건설·플랜트 산업이 내수 침체와 해외 수주 경쟁 격화로 숨막히는 이 시기에, 이란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준비된 자가 먼저 들어가는 것이다. 그 자리에 한국이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