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서울 성수동의 한 핀테크 스타트업 사무실. 20대 개발자들 사이로 흰 머리의 남성이 노트북을 펼친다. 올해 63세인 그는 대형 은행에서 30년 넘게 리스크 관리 업무를 맡았다가 3년 전 정년퇴직했다. 지금은 이 회사의 금융 컴플라이언스 고문 자격으로 주 3일 출근한다. 「젊은 친구들은 속도가 빠른데 규제 지형은 잘 모르더라고요. 내가 딱 그 부분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의 출근이 낯선 풍경만은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0세 이상 고용률은 45.9%로 전년보다 0.4%포인트 올랐고, 55~64세 경제활동 참가율은 71.6%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숫자만 보면 시니어 노동시장은 팽창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단순 경비나 청소 일자리를 전전하던 은퇴자들이, 이제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전문직 포지션을 채우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이 시니어를 원하는 이유

스타트업에게 시니어 인재는 역설적으로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다. 업력 수십 년의 베테랑을 정규직 연봉으로 고용하기는 부담스럽지만, 주 2~3일 프리랜서나 고문 형태로 활용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법무·회계·인사·영업 등 창업 초기 스타트업이 가장 취약한 분야에서, 시니어의 실전 경험은 컨설팅 비용 수천만 원을 아끼는 효과를 낸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와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니어 기술창업·재취업 지원 프로그램 참여자 수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어르신 일자리 플러스' 사업에도 전문직 매칭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시니어 멘토·고문을 두는 것이 투자자에게 '신뢰 시그널'로 작동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장의 온도차, 기대와 마찰 사이

그렇다고 현장이 매끄럽기만 한 건 아니다. 세대 간 소통 방식의 차이는 예상보다 두꺼운 벽으로 작용한다. 협업 툴 사용, 비대면 업무 문화, 수평적 호칭 등 스타트업의 일상적 환경이 시니어에게는 새로운 언어처럼 낯설다. 한 스타트업 인사 담당자는 「지식과 경험은 탁월한데, 슬랙 채널에서 보고서 형식 장문을 보내시거나 회의 때 결재 라인을 찾으시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시니어 본인의 기대치 조정도 과제다. 수십 년간 조직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지원 역할'에 머무는 심리적 불편함은 작지 않다. 일부 시니어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중도 이탈률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일자리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역할 정의와 기대 조율을 위한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커지고 있다.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

일본은 이미 이 문제를 10여 년 앞서 고민했다. '70세까지 취업 확보' 노력 의무를 기업에 부과한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2021년)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는 경제 전략이었다. 한국도 생산가능인구 감소 속도가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는 만큼, 시니어 인력 활용은 선택이 아닌 구조적 필요에 가까워지고 있다.

핵심은 '재고용'이 아니라 '재설계'다. 시니어가 스타트업에 녹아들려면 역할의 명확한 경계 설정, 세대 혼합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성과 측정 방식의 유연화가 함께 가야 한다. 몇몇 지자체와 창업 지원 기관이 시니어·청년 공동 창업 모델을 실험 중인 것도 이 방향의 탐색이다.

성수동 사무실의 그 남성은 오늘도 오전 회의에서 신입 개발자 옆에 앉아 금융당국 규제 이력을 설명한다. 20대는 코드를 짜고, 63세는 그 코드가 법의 어느 경계 위에 서 있는지를 짚는다. 이 조합이 어색하지 않은 사무실이 늘어날수록,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내성도 조금씩 두꺼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