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죄로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다. 신화는 오래된 질문을 담고 있다. 불을 퍼뜨리는 행위가 문명을 진보시킨다면, 그것을 빼앗긴 자의 고통은 누가 책임지는가.
2025년 1월,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가 네이버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냈다. 자사 뉴스 콘텐츠가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 학습에 무단으로 쓰였다는 것이었다. 국내 최초의 AI 뉴스 학습 저작권 소송이었다.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난 2026년 2월, 같은 3사는 오픈AI까지 추가 제소했다. 분노가 국경을 넘었다.
이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전 세계 AI 관련 지식재산권 소송은 2023년 약 20건에서 2025년 70건 이상으로 불어났다. 2년 만에 3.5배다. 2025년 9월, 생성형 AI '클로드'를 만든 앤트로픽은 작가들의 집단소송에서 최대 15억 달러—우리 돈 약 2조 1,760억 원—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독일 뮌헨 법원은 음악저작권 단체 GEMA가 오픈AI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불꽃의 값어치를 매기는 계산서가, 마침내 청구되기 시작했다.
AI 기업들의 반론도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인간의 학습 역시 수천 권의 책과 수만 편의 글을 읽으며 이루어진다. 철학자의 문체를 흡수하고, 시인의 리듬을 내면화하는 과정에 우리는 저작권료를 내지 않는다. 기계의 학습이 인간의 학습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라는 물음은 단순히 기각하기 어렵다. 기술 혁신을 위한 공정이용(fair use)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그러나 그 논리가 미끄러지는 지점이 있다. 인간이 책을 읽고 영감을 받는 것과, 기업이 타인의 노동 결과물을 수억 건 단위로 무단 흡수해 상업적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행위다. 2026년 1월, 과기정통부와 국가AI전략위원회가 「AI 학습 목적의 저작물 이용에 대한 광범위한 면책」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을 2분기 내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문화체육관광부와 창작자 단체들이 「사실상 무제한 학습 허용」이라며 반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면책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창작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의 협상력은 그만큼 좁아진다.
정부는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026년 2월, AI 개발사가 데이터 구매 계약을 맺거나 사용료를 지급하려 노력했는지를 분쟁 판단의 참고 요소로 명시한 공정이용 안내서를 발간했다. AI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기준도 마련했다. 단순한 프롬프트 입력은 창작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인간의 통제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이 입증될 때만 등록이 가능하다는 원칙이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방향은 옳다.
법과 제도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학습한 수십억 개의 문장 뒤에는 밤을 새운 기자가 있고, 원고지를 채운 소설가가 있고, 마감에 쫓기며 카메라를 든 피디가 있다. 그 불꽃을 가져다 쓰는 일이 진보라면, 진보의 수혜는 마땅히 불꽃을 만든 자와 나뉘어야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에서 가장 쓸쓸한 장면은 형벌이 아니다. 인간이 받은 불을, 인간이 어떻게 썼는지—그것이 이 이야기의 진짜 결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