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투자한 누적 금액이 수조 원대에 달한다. 덕분에 한국 드라마는 190개국 안방에 동시 송출되고, 제작비는 회당 수십억 원을 넘어섰다. 숫자만 보면 황금기다. 그런데 그 작품들의 지식재산권(IP)은 어디에 있는가. 대부분 플랫폼이 쥐고 있다.

이것이 K-콘텐츠 호황의 이면이다. 글로벌 OTT 플랫폼들은 제작비 전액 또는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대신 IP의 전부 혹은 핵심 권리를 확보하는 계약 구조를 표준처럼 굳혀왔다. 국내 제작사는 완성된 작품을 세계 무대에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작품이 만들어낸 2차 수익—OST, 굿즈, 리메이크, 시즌 속편—의 흐름은 플랫폼 쪽으로 흘러간다.

자본의 유입, 주도권의 이탈

글로벌 OTT의 한국 진출 초기, 국내 방송사와 제작사는 이 자본을 기회로 읽었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광고 수익이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OTT의 제작비 지원은 실질적 구원이었다. 문제는 협상력의 비대칭이었다. 플랫폼은 전 세계 유통망을 가진 갑(甲)이었고, 개별 제작사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착된 구조는 이렇다. 플랫폼이 제작비를 전액 지원하는 '오리지널' 방식에서 국내 제작사는 제작 수수료 수준의 마진만 확보한다. 히트작이 나와도 추가 수익을 가져갈 계약상 근거가 없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콘텐츠는 한국이 만들고, 가치는 플랫폼이 가져가는 구조」라고 표현한다. 과장이 아니다.

생태계의 균열—중소 제작사와 창작 인력의 이탈

더 깊은 문제는 산업 구조 전체가 뒤틀리고 있다는 점이다. OTT 오리지널에 대규모 자본이 집중되자 국내 제작 시장의 양극화가 빨라졌다. 대형 스튜디오와 OTT에 납품 가능한 제작사는 풍족한 예산을 누리는 반면, 그 아래 계층의 중소 제작사와 독립 프로덕션은 수주 기회 자체가 줄었다. OTT가 선호하는 장르와 규모의 작품만 살아남는 필터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창작 인력 시장도 재편됐다. 숙련된 작가·감독·기술 스태프가 OTT 프로젝트에 집중되면서 중저예산 제작 현장은 인력난을 겪는다. 새로운 창작자가 경험을 쌓을 중간 시장이 얇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한국 콘텐츠의 미래 경쟁력은 결국 다양한 층위의 창작 실험에서 나온다. 그 토양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구조적 전환을 위한 조건

해법은 단순하지 않다. OTT 자본을 배척할 수도 없고, 배척해서도 안 된다. 다만 계약 구조의 재균형은 가능하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자국에서 수익을 거두는 글로벌 플랫폼에 현지 콘텐츠 투자 비율 의무화와 IP 공동 보유 조항을 제도적으로 요구한다. 프랑스의 경우 플랫폼 매출의 일정 비율을 자국 콘텐츠 제작에 재투자하도록 법제화했다. 한국에서도 이 방향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구체적 입법으로 이어지는 속도는 더디다.

국내 OTT와 방송사가 공동 투자·공동 IP 보유 구조를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글로벌 유통망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국내 플랫폼의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K-콘텐츠의 세계적 인지도는 분명 높아졌다. 그런데 그 인지도가 쌓인 자리에 한국 산업의 체력도 함께 쌓이고 있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다음 시즌 투자를 끊는 순간, 그 화려한 성과 뒤에 무엇이 남는지를 지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