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의 연간 매출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다. 2025년 기준 1조 541억 원. 영업이익도 203억 원으로 흑자 폭을 키웠다. 수치만 보면 성장 서사다. 그런데 이 돈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지면 그림이 달라진다. 상당 부분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기 위해 한국 소비자가 낸 구독료다. K-콘텐츠가 플랫폼을 먹여 살리고, 그 플랫폼의 수익은 해외로 빠져나간다.
창작자는 있고 유통자는 없다
한국 콘텐츠 산업의 구조적 역설은 여기에 있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 기록을 갈아치우고, K-드라마가 동남아·유럽·남미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동안, 그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배는 줄곧 외국 선박이었다. 제작사는 납품업자 위치에 머물고, 지식재산권(IP)과 글로벌 유통권은 플랫폼 사업자가 쥔다. 제작비를 지원받는 대신 전 세계 독점 스트리밍권을 넘기는 계약 구조가 관행처럼 굳어졌다. 콘텐츠의 2차·3차 수익 창출 기회가 처음부터 차단되는 셈이다.
비교 대상은 일본과 미국이다. 일본은 자국 IP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만화 생태계를 수십 년간 내부에서 키웠고, OTT 진입 이후에도 제작사와 방송사가 상당한 권리를 보유하는 계약 관행을 유지한다. 미국 스튜디오들은 디즈니플러스, 피콕, 맥스 등 자체 플랫폼을 직접 운영하며 IP 수익을 수직 통합한다. 한국은 두 모델 모두 갖추지 못한 채 세계적 창작 역량만 앞서 달려왔다.
자체 플랫폼의 가능성과 한계
웨이브(Wavve)와 티빙(Tving)은 국내 OTT 시장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는 아직 변방이다. 두 플랫폼의 해외 가입자 규모와 콘텐츠 투자 규모는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단독 매출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분석된다.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 논의가 반복되는 것도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시도지만, 합병만으로 글로벌 유통 플랫폼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기술 인프라, 현지화 역량, 해외 결제 시스템, 마케팅 채널이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한류 콘텐츠의 해외 유통을 지원하는 사업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대부분 제작 단계 지원에 집중돼 있다. 유통 플랫폼 경쟁력을 직접 키우는 투자는 상대적으로 얇다. 플랫폼 없는 콘텐츠 지원은 포장지 없는 선물을 수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종속 구조를 깨는 조건
대안 경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시아 권역 공동 플랫폼 구상은 한국·일본·대만 콘텐츠 업계가 간헐적으로 논의해 온 모델이다. 개별 국가 단위로는 넷플릭스·디즈니에 맞서기 어렵지만, 아시아 콘텐츠를 묶은 연합 플랫폼은 충분한 수요 기반을 갖출 수 있다는 논리다.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지만, 한국이 그 논의의 중심에 서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검증된 콘텐츠 생산 능력을 보유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IP 계약 구조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해외 플랫폼과의 협상에서 제작사가 일정 기간 이후 IP 권리를 회수하거나, 2차 창작물에 대한 수익 배분을 명문화하는 표준 계약 모델을 산업 차원에서 정립하는 것이 현실적인 첫 걸음이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1조 원을 버는 구조는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그 수익의 일부가 한국 콘텐츠 생태계로 재순환되는 구조는 만들 수 있다.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희귀한 자원이 된 지금이 협상력이 가장 높은 시점이다. 이 창이 언제까지 열려 있을지는 알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