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가 성장 동력 고사라는 미증유의 위기 국면에 직면해 있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추격형(Fast Follower) 성장 모델'은 수명을 다했고, 잠재성장률은 매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핵심에는 국가 경쟁력의 보루여야 할 연구개발(R&D) 투자의 비효율성이 자리 잡고 있다. 본지는 단기 성과에 급급해 예산을 쪼개어 나누어 주던 기존의 관행적 R&D 배분 방식을 전면 폐기하고, 미래 잠재성장률을 견인할 '한계 돌파형 원천기술 연구'로 재원을 집중하는 패러다임 전환에 적극 찬성하며, 정부의 과감한 결단을 촉구한다.
체질 개선의 당위성은 객관적 지표로도 명백히 증명된다. 최근 우리나라의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은 사실상 0% 수준까지 추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과 자본을 아무리 투입해도 기술 혁신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정체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간 세계 최고 수준의 GDP 대비 R&D 예산을 쏟아붓고도 이 같은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은,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안전한 과제 위주로 예산을 잘게 쪼개 나누어 가졌던 '나눠먹기식' 투자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경직된 평가 제도가 혁신을 가로막아 온 셈이다.
실제 학계와 현장의 경고음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2026년 5월 15일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한국경제가 추격형 혁신의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지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계 돌파형 R&D 체계'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선진국이 닦아놓은 길을 빠르게 쫓아가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거듭나야 하며, 국가 R&D 예산은 바로 이러한 한계 돌파형 연구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R&D 예산 배분 및 평가 시스템의 전면적인 혁신에 나서야 한다. 첫째, 성공률 99%에 달하는 무늬만 혁신인 과제들에 대한 지원을 과감히 삭감하고, 성공 확률은 낮지만 성공 시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고위험·고수익(High-Risk, High-Return) 원천기술에 예산을 집중 배정해야 한다. 둘째,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아름다운 실패'를 용인하는 유연한 평가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처 간 장벽을 허물고 우주·바이오·양자 등 국가 전략 기술 분야에 메가 프로젝트 단위로 재원을 집중 투자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R&D 예산 혁신은 단순한 재정 지출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생존이 걸린 구조 개혁이다. 단기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예산 배분의 메스를 대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 정부와 과학기술계는 뼈를 깎는 성찰을 통해 R&D 투자의 체질을 원천기술 중심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기술 패권 경쟁이 몰아치는 글로벌 무대에서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